[명법문] 청주 마야사 현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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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청주 마야사 현진 스님
  • 현진 스님
  • 승인 2019.05.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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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사진제공. 마야사

오늘 이 시간에는 행복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 사과를 두 개 가진 사람과 한 개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누가 더 행복하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개를 지닌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답은 한 개와 두 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맛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과를 지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과를 활용하는 사람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비로소 행복을 향유할 줄 아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향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불행이 되기 쉽습니다. 소유하고 있다고만 해서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행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연봉이 얼마냐?’, ‘집이 몇 평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어진 소박한 기쁨을 즐기는 인생이 더욱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큰 산에 걸려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서입니다. 즉, 작은 일에 마음 상하고 사소한 것에 기분이 상합니다. 다시 말해 소소한 일상에 기쁨을 느껴야 행복지수가 상승한다는 뜻도 됩니다. 보잘것없는 조건이나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열등하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린 왕자』를 읽어보면,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 때 어른들이 “너희 집은 몇 층이냐, 크기가 얼마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면 “너희 집에 장미꽃이 피었니? 담쟁이가 자랐니?” 하며 물어보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른들은 매사를 물질적으로 평가하지만 어린이들은 가치적으로 평가합니다. 모든 상황을 물질로 기준을 삼는 인생은 너무 계산적이고 인정이 없어 보입니다. 돈이나 명예 외에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자잘한 조건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보’라고 표현할 때 그 바보의 어원은 ‘밥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밥만 먹는 사람을 밥보라고 하다가 바보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보라는 단어에는 몸만 챙기는 사람, 경쟁하는 사람, 물질적인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 보면 우리 주변에는 바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신주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런 바보 노릇을 그만하는 첫걸음은 마음 챙기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을 챙기는 사람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독서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마음을 챙기기 전에는 성공이나 재테크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종교와 명상 서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의 내 행동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가?’ 하는 등의 성찰을 해본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본심과 욕심, 이렇게 두 가지가 존재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욕심인지, 본심인지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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