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줄기 따라 굽이치는 길을 거슬러 올라 지리산 반야봉에 자리 잡은 칠불사로 향했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출가해 성불했다는 칠불사는 문수보살도량으로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선찰禪刹이기도 하다. 칠불사는 동안거 중이었다. 도량은 용맹정진하는 납자의 선기禪氣로 가득했고 공양간은 바쁘게 돌아갔다. 공양간에서 큰 통을 들고 나온 거사가 뒷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사는 배춧잎, 무 껍질, 푸성귀 따위가 가득 들어있는 통을 바닥에 놓인 철 대야에 탈싹 뒤집어 비우고는, 커다란 바위에 퉁, 퉁, 퉁, 치며 속을 깨끗이 털어낸다. 퉁, 소리가 산골짜기를 크게 울렸다. 이제 곧 지리산 멧돼지 가족이 공양을 하러 내려올 것이다. — “요즘엔 해거름에 내려오니더. 여름엔 일찍 내려오기도 하는데, 요즘엔 산중에 도토리 먹느라 잘 안 내려와요. 좀 더 추워지면 자주 내려오기는 하더만. 지들 자유롭게 왔다갔다 함니더.”매일 오후 공양간에서 나온 음식물을 가려 멧돼지 밥을 챙겨주는 거사님은 속을 비운 통을 들고서, 멧돼지를 찾아온 이방인에게 성글게 엮은 대나무 울타리 앞을 가리켰다.
지리산 멧돼지 보살의 공양 시간
“돼지들이 밥을 먹으면 여까지(울타리 밑) 밥통을 밀어요. 근데 울타리는 절대로 안 넘어 와. 밥 먹다가도 사람이 가까이 가면 후다닥 도망가요. 멀리까진 안가고 슬쩍 쳐다보고 있다가 내려와요. 그래도 여가 절이라꼬, 사람한테 한 번도 달겨든 적은 없어요.”
이 자리에서 밥을 준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칠불사 총무 덕원 스님은 “시줏돈 받아서 곡식 먹고, 남겨진 부산물을 잘 가려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이라 말했다. 사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돼서 좋고, 산돼지들에게는 음식이 생겨서 좋다. 동안거에 드신 스님들이 내놓은 공양을 멧돼지 가족이 먹는다.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멧돼지를 만나겠다고 공양간 앞 벤치에 앉아, 붉은 낙엽 떨어진 뒷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객식구를 보는 것은 동안거를 나던 수좌스님들의 재미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내려오던 수좌스님들은 찬데 앉아있는 객에게 “모르는 냄새가 나면 안 내려 올낀데….” “올해 특히 도토리가 많이 나서 늦게 해 다 지면 내려오데.” 하고 걱정하면서도, “나는 멧돼지랑 이야기 나눠본 적도 있다”며 금방 내려올 거라고 눙쳤다. “아이고, 날도 추운데 공양 하고 보이소.” 하는 스님께 “제가 멧돼지랑 미리 약속을 안 하고 와서요. 멧돼지 공양 기다리다가 하겠습니다.” 하고 답하자 스님은 안부 전해달라며 껄껄 웃었다.
지리산의 해는 눈 깜짝할 새 떨어진다. 6시면 빛이 물러가 산골짜기는 어둠으로 가득 찬다. 낙엽인지 돌인지 구분도 안 되는 컴컴한 산속에서 챡- 챡- 챡- 챡-, 낙엽 밟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네 마리. 봄철에 나와 성장한 멧돼지 형제다.(남매일지도 모른다.) 멧돼지들은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을 경계하면서도 맛있게 공양을 먹어 치운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신나게 들리던지, ‘아이고 잘 먹는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여름철에는 작달막한 새끼까지 서른 마리가 돌아가며 온단다.
“산에 포행하다 우연히 마주쳐도 절 냄새가 나서 그런지 쓱 보고 지나쳐요. 코로 킁킁 하더니 ‘어, 아는 보살이네.’ 하는 느낌으로 슬쩍 지나갑니다. 밥 먹을 때도 절 식구가 가까이 가면 성질을 안 내요. 신기한 것은 고기나 파 등 오신채를 먹은 사람이 오면 푸르륵 댑니다.”
종무소의 명성 보살은 멧돼지들이 본능인지, 자기를 해할 사람인지를 안다고 했다. 그래서 한밤중에는 이 도량이 쟤들 놀이터란다. 하지만 사람이 도량에서 산돼지를 마주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아주 우연히 절 마당 가래나무 밑에서 열매를 주워 먹던 산돼지들과 만날 때가 있는데, “얘. 너 왜 여기 있니. 어서 가.” 하고 말을 걸면 얼른 돌아간단다.
땅이 누구 것이랄 게 있나요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멧돼지도 걸식하러 내려온 거 아닌가요.” 하고 장난스레 묻자 덕원 스님은 “이렇게 때 맞춰 먹으러 오는 모습이 본 모습은 아니죠. 쟤들도 부처님 도량에서 살아서 나름 산속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하곤 살짝 미소 지었다. 스님은 서로 고마운 일이라 했다. 자기네 땅이나 우리 땅이나 똑같으니 주인 없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란다.
“땅이라는 게, 사람들이 내 거라고 금 긋고, 종이로 돈 주고 사서 금 그은 것뿐이지, 그런 행위 아니면 누구 거라는 게 어디 있어요. 정해진 게 없죠. 생각해보면 쟤들이 우리보다 이 터에 오래 살았을지도 몰라요. 칠불사는 여순사건 때 불타고 30년은 폐허로 있었는데, 그럼 이 터가 자기들 세상이었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내 거라고 스님들이 금 그어서 내쫒긴 거나 마찬가질 텐데. 자기들도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지 않겠어요.”
그래도 무섭지 않냐고 물으니 몸집이 큰 개도 가족이고 낯이 익으면 물지 않는다는 대답이다. 개가 짖고 무는 것은 상대방이 자기를 다치게 할까봐 겁날 때 벌어지는 일이다. 마찬가지다. 도심에서 멧돼지가 달려드는 이유는 너무나 이질적인 환경에 긴장하고 놀라서라 했다. 퇴로가 없으니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성은 참 순한 애들입니다. 초식동물, 큰 토끼라고 보면 돼요. 산에서 쟤들 마주치면 2미터 돌이라도 훌쩍 뛰어 올라 도망가요. 돼지들도 도망가고 꺽꺽거리고 달려드는 게 위험하다고 느껴서 그런 거거든. 그런데 여기는 밥 주지, 사람들도 자기들하고 비슷한 순한 사람들만 왔다갔다 거리지, 만나도 자기들 보면 겁주는 게 아니라 멀뚱히 쳐다보지. 서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일이 없잖아요. 야생동물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식굽니다. 쟤들도 먹을 거 있어서 좋고, 우리도 환경문제 해결하고 좋지요. 또 여기서 배부르면 다른데 가서 해코지 덜할 거 아니에요.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가는 건 먹을 게 없어서거든요. 그런데 산에 가면 도토리 다 주워가버리니, 먹고 살아야하는데 어떻게 해요. 쟤들도 생존의 문제인데.”
"쟤들 우리 식구지 뭐"
아침 공양을 하러 갈 땐 캄캄하더니 설거지를 마치고 나올 땐 마당이 환했다. 어젯밤 멧돼지들은 돌아가며 공양을 싹 비웠다. 오후가 되면 또 공양을 내놓을 터이다. “쟤들이 여기서 서로 먹겠다고 치받고 싸우면 생각해보겠지만, 그렇지 않고 때 맞춰 얌전히 왔다 가고, 그 덕에 주변을 덜 파기도 하고, 민가도 덜 내려가고. 이정도 되면 같이 살아야지 않겠어요. 이게 사는 모습이지 뭐.”
공존이라고 말하던 스님은 저이의 삶도 인간과 똑같다고 했다. 멧돼지도 밥그릇 경쟁을 한다. 서열이 있어 자기 밥그릇에 손대면 으르렁대고, 머리로 밀쳐내기도 하며 나름의 경쟁을 한다.
“그런 것조차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우리나 그들 모습이나 방식이 다를 뿐이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모습은 같은 거 아닐까요. 그런데 다른 점은 쟤들은 음식을 얻기 위해 심하게 다투지 않아요. 어쩌면 욕심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보다 나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이 산속에서 보고 느끼는 게 그런 거죠. 편하게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돈 많은 게 편한 게 아니고, 어떤 방식, 어떤 사고를 가지고 사는 게 편한 삶일까….”
스님은 이제 곧 산속에 눈이 많이 올 텐데, 저 친구들이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했다. 올해 여름에는 비도 무섭게 왔었다. 궁금하다.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사는 게 걱정이죠. 나는 처마 밑에 있는데, 쟤들은 어디 있을까. 덩치도 크고 숨을 때도 마땅치 않을 텐데…. 눈이 오면 며칠씩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할 텐데 뭘 먹고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그런데 보면 사람이 제일 약한 것 같아요. 자연에서 제일 약한 게 사람인데 자연을 제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이날 서울은 미세먼지 경보가 내렸다. 하늘은 누런색이었다. 지리산 산속 공기는 맑았지만 이곳도 옛날 같진 않다. 작년부터는 칠불사에서 보이던 제일 높은 봉우리 광양 백운산도 부옇게 보인다. 스님은 이것도 결국 우리 몫이라 했다. 마스크 쓰고 외출을 자제하는 것 외에는 대처할 능력도 없는데 개발에 무감각하다. 쟤들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는지 알아차려야 하는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덜 소비하고 덜 쓰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자제하는 것. 스님은 “산돼지 보면서 이런 고민까지 하면 너무 거창한가?” 하고 웃으며 툇마루에 앉아 멀리 백운산을 바라봤다.
“쟤들 우리 식구지 뭐. 스님들 먹는 밥그릇에 같이 머리 디밀고 먹고 하면, 여기까지 온 것도 인연인데 그 인연 조금 더 성숙돼서 지금보단 나은 삶 오지 않겠어요. 또 나름으로는 여기서 먹으니 덜 경쟁하고 덜 배고플 거 아니에요. 목탁 소리 근처까지 온 것만으로도 무리에서는 조금은 나은 상태로 올라온 거죠. 다음 생애는 더 좋은 몸 받아 오면 좋겠어요. 그 이상이 되면, 정말 좋은 일이죠.”
햇살이 따뜻했다. 동안거가 해제될 때까지 공양간은 선식禪食을 짓느라 바쁘게 돌아간다. 퉁, 퉁, 퉁, 소리가 산골짜기를 크게 울리면, 곧 멧돼지 가족이 공양을 하러 내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