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사는 동물이야기] 칠불사 스님과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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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사는 동물이야기] 칠불사 스님과 멧돼지
  • 유윤정
  • 승인 2019.01.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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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퉁~ 멧돼지 공양 목탁소리
사진 : 최배문

   

섬진강 줄기 따라 굽이치는 길을 거슬러 올라 지리산 반야봉에 자리 잡은 칠불사로 향했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출가해 성불했다는 칠불사는 문수보살도량으로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선찰禪刹이기도 하다. 칠불사는 동안거 중이었다. 도량은 용맹정진하는 납자의 선기禪氣로 가득했고 공양간은 바쁘게 돌아갔다. 공양간에서 큰 통을 들고 나온 거사가 뒷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사는 배춧잎, 무 껍질, 푸성귀 따위가 가득 들어있는 통을 바닥에 놓인 철 대야에 탈싹 뒤집어 비우고는, 커다란 바위에 퉁, 퉁, 퉁, 치며 속을 깨끗이 털어낸다. 퉁, 소리가 산골짜기를 크게 울렸다. 이제 곧 지리산 멧돼지 가족이 공양을 하러 내려올 것이다.   —   “요즘엔 해거름에 내려오니더. 여름엔 일찍 내려오기도 하는데, 요즘엔 산중에 도토리 먹느라 잘 안 내려와요. 좀 더 추워지면 자주 내려오기는 하더만. 지들 자유롭게 왔다갔다 함니더.”매일 오후 공양간에서 나온 음식물을 가려 멧돼지 밥을 챙겨주는 거사님은 속을 비운 통을 들고서, 멧돼지를 찾아온 이방인에게 성글게 엮은 대나무 울타리 앞을 가리켰다.

지리산 멧돼지 보살의 공양 시간

“돼지들이 밥을 먹으면 여까지(울타리 밑) 밥통을 밀어요. 근데 울타리는 절대로 안 넘어 와. 밥 먹다가도 사람이 가까이 가면 후다닥 도망가요. 멀리까진 안가고 슬쩍 쳐다보고 있다가 내려와요. 그래도 여가 절이라꼬, 사람한테 한 번도 달겨든 적은 없어요.”

이 자리에서 밥을 준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칠불사 총무 덕원 스님은 “시줏돈 받아서 곡식 먹고, 남겨진 부산물을 잘 가려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이라 말했다. 사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돼서 좋고, 산돼지들에게는 음식이 생겨서 좋다. 동안거에 드신 스님들이 내놓은 공양을 멧돼지 가족이 먹는다.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멧돼지를 만나겠다고 공양간 앞 벤치에 앉아, 붉은 낙엽 떨어진 뒷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객식구를 보는 것은 동안거를 나던 수좌스님들의 재미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내려오던 수좌스님들은 찬데 앉아있는 객에게 “모르는 냄새가 나면 안 내려 올낀데….” “올해 특히 도토리가 많이 나서 늦게 해 다 지면 내려오데.” 하고 걱정하면서도, “나는 멧돼지랑 이야기 나눠본 적도 있다”며 금방 내려올 거라고 눙쳤다. “아이고, 날도 추운데 공양 하고 보이소.” 하는 스님께 “제가 멧돼지랑 미리 약속을 안 하고 와서요. 멧돼지 공양 기다리다가 하겠습니다.” 하고 답하자 스님은 안부 전해달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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