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명장면] 밧차곳따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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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명장면] 밧차곳따의 질문
  • 성재헌
  • 승인 2018.11.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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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상함을 따져묻던 밧차곳따의 물음에 답한 붓다
상카시아 유적의 사원 ⓒ불광미디어

가을이다. 그 푸르던 빛깔도 사그라지고 갖가지 형체들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저 풀과 잎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시간의 강물에 실려 가뭇없이 사라지는 풍경들, 봄과 여름의 풍경에 찬란한 기억이라도 한 조각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계절에 자못 서글픔이 스며들 것이다. 

가을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자명한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인연 따라 사라지기 마련이다. 놓아야 할 때가 됐을 때, 그것이 본래 빌려왔던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면 그 자리에 아쉬움이 끼어들 수 있을까? 도리어 맘껏 사용하도록 허용해 준 주인에게 감사하고, 이자도 낼 줄 몰랐던 자신의 파렴치함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래서 빌려온 줄 아는 사람들에게 이 가을은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무던히도 늘어나는 계절이다. 

저 숲에서 풀과 잎들이 사라지듯이 삶의 장에도 가을은 찾아든다.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가슴 언저리에 서글픔이 스미는지, 아님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그득 차오르는지. 후자의 경우라면 걱정할 것 없겠지만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그 막막한 서글픔의 굴레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찰해야 슬픔과 우울의 장막을 걷을 수 있을까? 『맛지마 니까야』 「밧차곳따에게 불에 비유하여 설한 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진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던 수행자 밧차곳따가 부처님을 찾아왔다. 밧차곳따는 부처님에게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고 그 견해見解를 물었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보지도 않고, 저렇게 보지도 않는다는 애매모호한 대답만 되풀이한다. 그 끝에 밧차곳따가 부처님께 물었다. 

“당신은 죽은 뒤에도 존재합니까? 당신은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당신은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밧차곳따, 그 네 가지 생각이 모두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런 견해는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 그런 견해는 탐욕과 분노의 대상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슬픔과 우울이 사라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고통을 소멸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당장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올바로 깨닫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열반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밧차곳따, 나는 사변적인 견해에 이러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기에 일체 사변적 견해를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밧차곳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당신도 조금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이고,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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