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교학해설] 심식의 훈습설 / 오형근
상태바
[심층교학해설] 심식의 훈습설 / 오형근
  • 관리자
  • 승인 2007.08.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식학과 인간성(29)

전호에서 여러 가지 종자설을 살펴 보았다. 종자는 미래의 결과를 가져올 원인으로서 매우 다양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종자가 아라야식내에 보존되어 있다가 인연을 만나면 즉각 현실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선(善)과 악(惡)등 종자가 아라야식 안에 안주(安住)하고 있다가 수시로 외부와 내부의 연(緣)의 도움(助演)을 받아 현실 생활 위에 다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과거에 익혔던 지식과 습관 등을 말하며 이는 곧 새롭게 전개되는 정신의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곧 훈습에 의하여 조성된 종자로부터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또 훈습(薰習)의 논리가 전개된다.

훈습의 논리는 아라야식과 그 밖의 칠전식(七轉識)과의 관계를 논리화한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식(眼識)은 색경(色境)을 대상으로 하여 인식하고, 이식(耳識)은 성경(聲境)을 대상으로 하여 인식하는 등 모든 식(諸八識)은 제각기 인식의 대상을 상대로 하여 활동하는 것을 훈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마음(一心)을 팔식(八識)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유식학(唯識學)은 팔식의 활동이 서로 마찰하지 않고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는 또다른 면을 설명하고자 훈습설을 전개하고 있다.

유식학의 훈습설에 의하면 팔식의 활동은 훈습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훈습은 종자와 업을 조성하는 산모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팔식의 내외의 활동이 곧 종자를 조성하는 훈습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의하여 훈습에 대한 내용을 현실성있게 해석하게 된다. 즉 우리 인간이 정신을 통하여 지식을 익히고 배우며 개발하는 것을 생활수단으로 삼는다는 뜻을 살펴서 훈(熏)은 개발(開發) 또는 유치(由致)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개발은 전에 없었던 지식과 사상, 정신 그리고 육체적인 기술과 습관성 등을 새롭게 개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개발된 내용들은 하나도 유실하지 않고 미래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기술로 나타날 수 있는 종자로서 아라야식에 보존시키게 된다. 이를 신훈종자(新熏種子)라 한다. 동시에 이 개발(開發)은 이미 아라야식에 보존된 지식과 사상 및 기술과 같은 원인종자(原因種子)를 돕는 조연(助緣)이 되어 현실의 정신생활 속에 발생하도록 한다는 뜻도 있다.

다음 유치의 뜻도 역시 이미 보존되어 있는 아라야식 내의 종자를 밖으로 유치하여 현실생활에 현행(現行)의 상태로 포현되도록 하는 역할을 말한다. 이와 같이 개발과 유치의 뜻은 현재의 정신생활과 밀착된 뜻을 지니고 있다.

다음 습(習)에 대한 뜻을 살펴보기로 한다. 습의 내용에는 생(生), 근(近), 수(數)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부언하면, 습은 익힌다는 뜻으로서 종자를 아라야식 내에 새롭게 조성하되 시시각각 자주 한다는 뜻에서 수(數)라 하며 전체의 뜻을 종합하여 자주 훈습함을 말한다. 그리고 근(近)은 아라야식 내에 보존된 종자로 하여금 시간적으로 즉시 한다는 뜻이다.

끝으로 생(生)은 아라야식 내에 있는 종자를 결과로 발생케 하는 것을 뜻한다. 이상과 같은 수, 근, 생의 뜻을 종합하여 보면 종자를 자주(數) 훈습하고 동시에 그 종자로 하여금 즉시(卽)에 발생(生)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상과 같이 훈습의 뜻에는 매우 현실성이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종자의 훈습에는 밖으로부터 훈습되어지는 종자가 있는가 하면 안에 밖으로 발생하는 훈습의 뜻도 있는 것이다. 즉 밖에서 안으로 훈습되어지는 곳은 곧 아라야식을 말하고 그 종자를 능동적으로 훈습하는 심식은 칠전식이다. 그렇다면 종자의 훈습을 받는 아라야식은 어떠한 내용으로 훈습을 받게 되며 동시에 훈습을 하는 칠전식은 어떠한 내용이 있어 훈습을 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심식의 활동을 말하여 소훈식(小熏識) 또 능훈식(能熏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종자의 훈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을 소훈식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능동적으로 종자를 훈습하는 식을 능훈식이라 한다.

이와 같이 종자의 훈습 내용을 분류하여 소훈식 또는 능훈식으로 명칭을 붙이고 있다. 이들 별명들을 팔식에 관계시켜 보면 아라야식은 소훈식이 되고 그밖에 말나식(末那識)등 칠전식은 능훈식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소훈식과 능훈식은 무조건 이름이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소훈사의(所熏四義)와 능훈사의(能熏四義)로서 설명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소훈의 사의

소훈(所熏)은 훈습을 받는다는 뜻으로서 이는 아라야식이 칠전식이 훈습하는 종자를 수동적으로 훈습을 받는 입장을 뜻한다. 이와같이 종자와 업력의 훈습을 받는 심식에는 반드시 네 가지 조건을 구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아라야식에는 다른 식(識)이 구비할 수 없는 네 가지 조건(四義)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