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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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3.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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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緣起(4)

먼저 『유마경』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갠지즈강의 지류인 간닥(Gandak)강 하류에 위치한 바이샬리(Vaiśālī, 毘舍離). 이곳은 석가모니 당시 교통의 요충지로 자유로운 기운이 넘치는 부유한 상업도시였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의 고향이기도 하며, 온 세상에 매혹을 떨치던 유녀遊女 암바팔리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녀의 허리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시바신까지도 자신의 아내인 여신들을 잊어버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는 암바팔리, 그녀도 결국 석가모니에 귀의해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 유마 거사의 말을 나의 말로 받아들일 때
석가모니는 바이샬리에서 많은 교화 활동을 펼쳤다.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안거를 보낸 곳도 여기였으며, 열반에 든 후에는 사리탑이 세워지고 제2회 불전 편찬회의(結集)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바로 이 도시에 유마維摩라 불리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높은 지혜와 넓은 덕으로 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그는 방편으로 병석에 누웠다. 국왕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고, 유마 거사는 그들 각자에게 맞는 가르침을 설하여 깨달음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바이샬리 교외의 암바팔리 동산(菴羅樹園, 유녀 암바팔리가 기증한 땅)에서 법을 설하고 계시던 석가모니는 유마 거사의 병을 알고 제자들을 보내어 병문안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유명한 10대 제자와 보살들 모두가 자신들은 자격이 되지 않아 병문안을 갈 수 없다고 했다. 까닭인 즉, 예전에 유마 거사의 뛰어난 설법에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문수사리보살이 어쩔 수 없이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암바팔리 동산의 법회에 있던 수많은 보살과 불제자와 천인들은 생각했다. “천하의 문수사리보살과 유마 거사, 이 두 위인이 대론을 벌이면 불교의 궁극적 진리가 설해질 것이다.” 그들은 문수보살의 뒤를 따라 바이샬리 성 안의 유마 거사의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

문수보살은 병의 차도를 물으면서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유마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생이 병들면 내가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습니다.

유마 거사의 이 말을 나와 관계없는 위대한 성인의 말로 넘겨 버린다면, 당신에게 불교는 이미 죽고 없다. ‘불교 따로, 나 따로’의 불교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형해에 불과하다. 유마 거사의 이 말을 나의 말로 받아들일 때, 불교는 당신의 일상에서 의미 있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 이 몸의 시작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중생이 병들면 내가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웃집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면 배가 아프고, 그 당첨이 무효화되면 아팠던 배가 낫는 그런 사람들 아닌가? 우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유마 거사의 이 대단한 말은 연기를 체득體得한 자가 하는 말이다. 또한 유마 거사의 방에 모인 사람들이 알기를 기대했던 불교의 궁극적 진리이기도 하다.

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부터 살펴보자. 흔히 사람은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나의 몸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모님의 두 정혈이 합쳐져서 현재의 이 몸이 잉태되었다. 부모님의 정혈은 내 것이 아니니 처음부터 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부터는 나 혼자 힘으로 생명을 유지해 온 것이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오늘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김치 한 쪽은 온 우주의 합작품이다. 배추가 자라는 땅은 아득한 옛날 바다 아래의 암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암반이 지금의 비옥한 토지가 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동안 태양, 비, 바람, 낙엽 등에 의해서였다. 배추 씨앗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했으며, 배추가 김치로 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참여했던가?

배추를 뽑아 다듬고 양념을 버무린 사람들의 노고. 그 김치를 보관하는 독을 만들 때 쏟아 부었던 그 누군가의 땀. 배추와 독을 운반한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의 열정, 그 자동차를 제조한 사람의 기술과 힘. 또한 그 사람들을 낳아서 기른 부모님들의 정성과 애환. 그 부모님의 부모님은 또 얼마나 정성을 다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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