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이 참선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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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 참선을 만나면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8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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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 개화사 소리향차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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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화동 개화사 법당에는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다. 송강 스님은 이를 ‘태자사유상’이라고 일컫는다. 청년 싯다르타가 태자 시절 숲속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태자는 숲이 들려주는 소리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서울 도심 주택가 근처의 숲아래 정갈하게 자리한 개화사에서는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소리향차법회가 열린다. 클래식음악과 침향이 그윽한 차맛을 더하는 다회茶會를 중심으로 앞에는 벽암록 강의와 선문답, 뒤에는 참선 실참이 진행된다. 소리와 향내음에 이끌리듯 찾아간 그 곳, 언어를 내려놓고 찻잔을 들어 선禪의 정수를 맛보는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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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어록을 문답으로 배우다

둥근 구슬 둥글둥글 옥은 짤랑짤랑

말에 싣고 나귀에 싣고 무쇠배에 실었네
바다와 산의 일없는 객에게 나눠주어
큰 자라 낚을 때에 한 올가미로 쓰게 하네

벽암록에 나오는 ‘자복 스님의 일원상’ 일화를 풀이한 게송이다. 개화사 소리향차법회의 다회에 앞서 진행되는 벽암록 강의시간, 주지 송강 스님은 일화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가며 친절히 설명했다. 일화의 내용은 이렇다. 진조가 자복 스님을 뵈러 오자 자복 스님이 말없이 허공에 일원상을 그렸고 진조는 이를 본질에 어긋난다 하였다. 다시 자복 스님이 일원상에 점을 찍자 진조는 허튼 짓거리라고 일갈했고, 자복 스님은 돌아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객을 맞는 기쁨을 일원상으로 표현하며 자연 그대로의 순수를 원만한 실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던 자복 스님과 달리, 본질이다, 진여다 하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던 진조의 얕은 경계를 꼬집는 이야기다. 이어서 송강 스님이 게송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놓고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각자의 알음 알이대로 대답이 나온다. 송강 스님은 답변들의 오류를 짚어 주며 거침없이 새로운 답을 요구했다. 알듯 모를 듯한 선문답이 오가는 사이, 내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수수께끼 같은 게송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용트림이 일어났다. 벗어나려 애쓰면 애쓸수록 조여드는 올가미처럼 답답하기만 한데, 그러는 사이 강의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궁색한 살림밑천을 모조리 들킨 듯 부끄럽고 여전히 답이 찾아지지 않아 조바심으로 엉거주춤해진 마음은 다회茶會 시간에 접어들자 어느덧 차분히 정돈되었다.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클래식 선율이 흘렀다. 곡명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라고 했다. 스님과 입승 소임자의 손길로 우려낸 차가 불단에 올려지고 침묵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참석자들에게 모두 전달된 다음 송강 스님이 찬탄의 기도를 올린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모두 담아서 사람의 공력을 빌어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차를 대하는 데에 특별한 예법은 없었다. 잔을 들어 마실 뿐. 1시간의 다회는 침향의 향기와 음악의 선율 속에서 말없이 계속됐다.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묵언을 합니다. 말하지 않고 감각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자기 내면으로 향하게 돼요. ‘아, 향이 좋구나, 차맛 좋다.’ 하면서 자기 안으로 쓰윽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게 30분, 1시간씩 앉아 있다 보면 몇 개월 뒤에는 앉아있는 게 자연스레 익숙해집니다. 화두 들기도 가능해지죠. 화두는 의심이에요. 본인이 의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리 앉아 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일단은 사유적 의심으로 시작해서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겁니다.”

참선 실참으로 이어지는 쉬는 시간 송강 스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선어록 문답으로 기본기를 다지고 다회로 긴장을 풀어서인지 벽을 향해 앉아 화두를 참구하는 2시간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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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 듣겠다고 이런 스피커가 필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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