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와 장엄] 바닥의 장엄, 전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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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와 장엄] 바닥의 장엄, 전塼
  • 유근자
  • 승인 2010.11.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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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와 장엄

                                                                                                                      01. 정림사 절터의 5층 석탑과

정림사의 탑과 불상, 그리고 바닥 장엄

지난 여름 한창 연꽃이 피어오를 때, 남편과 함께 부여로 역사 여행을 떠났다. 청주에서 살고 있는 지금, 백제 문화 탐방을 게을리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 후 이루어진 탐방이었다. 첫 목적지는 정림사 절터였다. 그곳에는 백제의 석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림사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사비시대(538~660)의 중심 사찰이다. 발굴조사 때 강당 터에서 나온 기와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 고려 현종 19년(1028)에 백제 사찰의 강당 위에 다시 건물을 짓고 정림사로 불렀음이 밝혀졌다.

정림사 터는 현재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중문 앞의 연못, 백제 때 세워진 5층 석탑, 고려 때 조성된 석불좌상이 나란히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그림 1).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 앞에 서면 백제인의 기상이 절로 느껴진다. 발굴 전에는 1층 탑신 4면에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새겨넣어 ‘평제탑(平濟塔)’이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석탑 뒤에는 강당 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고려 때 조성한 돌로 된 부처님이 있다. 이 부처님을 위해 1993년 고증을 통해 현재의 보호각 건물을 세웠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보호각 내부의 모습이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부처님의 모습.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까닭이다. 부처님은 돌로 만든 높은 연꽃대좌 위에앉아 있고 법당 안은 온통 전(塼)이 깔려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마루가 깔린 법당 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그림 02. 범어사 보제루에서 대웅전 가는 길의 문양전

왜 법당 바닥을 전으로 장엄했을까

벽돌[塼]이 오래 전부터 왕궁·왕릉·관아와 사찰 등에서 건물을 장엄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경운궁이나 덕수궁에 가면 벽돌을 이용해 굴뚝을 쌓아 두었는데 그 모습이 일품이다. 백제의 대표적 왕릉인 무령왕릉 안에 들어가 보면 벽돌을 이용한 무덤, 즉 전축분(塼築墳)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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