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답지 않아 더 스님다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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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답지 않아 더 스님다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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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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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부 /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종림 스님
▲ 종림 스님 ː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19944년 경남 함양 안의 출생. 1968년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제방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해인사 도서관장, 월간 「해인」 편집장, 대흥사 선원장, 세계전자불전협의회 공동의장, ‘2006 한국불교학결집대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종림잡설-망량의 노래』가 있다.

종림 스님은 불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꽤 알려진 인물이다. 고려대장경을 사이버 세상에 재현시킨 스님으로서보다는, 격식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기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대중들이 모인 장소에서 대놓고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모습은 예사고, 전국승려대회에서 만화 ‘짱구는 못 말려’를 보다 일간지 카메라에 잡혀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가식 없는 행동은 때론 세간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디에도 걸림 없고 자유롭다. 워낙에 사심이 없고 기존 질서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품 때문이다. 스님답지 않아서 더 스님다운 스님, 그가 최근 또 큰일을 저질렀다. 바로 일본 남선사에 소장된 1,800여 권에 이르는 고려대장경 초조본의 디지털 복원을 마치고, 천년 동안 숨겨져 온 비장(秘藏)을 1월 25일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무심코 세상을 쳐다보는 자

종림 스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늦깎이로 출가했다. 고향인 경남 함양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철학에 심취한 책벌레였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재학시절에도 수업은 딴전이었고, 국립도서관에서 책만 파고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2년여 간 지속되었다. 공산주의 비평, 노장 철학, 헤겔의 변증법, 토인비의 역사철학, 프롬의 정신분석학이 그의 손과 머리를 거쳐 불교에 접근하는 사상적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그 이후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절을 향해 있었다.

1971년 겨울 그가 도착한 곳은 함양과 국립도서관에서 가장 먼 곳, 오대산 월정사였다. 겨울 내내 눈 속에 파묻혀 나무를 패며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냈다. 월정사는 가족적인 분위기였으나, 문득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에 봄길을 따라 해인사로 내려왔다. 행자생활을 거치고 지관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강원에 두 번이나 들어갔는데 졸업은 못 했어. 한문 경전 외우고 번역하는 서당식 교육에 적응을 못한 거지. 이후 선방에 칠팔년 다녔어. 깨달음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내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빴어. 내 안의 갈등은 이상과 현실, 즉 타고난 본성과 사회적 관습 사이의 갭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있었지. 그 방법론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어. 그러다가 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게 됐지. 허허벌판 사막 한 가운데 나를 떨어트려 둔 거야. 길도 사물도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 무심코 쳐다보는 자만 남은 거지. 그렇게 되니 나를 얽어매고 있던 굴레의 선들이 스르르 사라지더라구. 그러니까 세상 쳐다보는 게 한결 수월해졌어. 이념도 감정도 내려놓고 세상 한가운데 나를 가만히 놔둔 거지. 그냥 있는 그대로…. 그 후 내 할 거 다했다 해서 선방을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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