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師의 雲數시절] 우리스님 한암寒巖스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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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師의 雲數시절] 우리스님 한암寒巖스님(3)
  • 조용명
  • 승인 2009.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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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師의 雲數시절

우리 스님은 상주지물(常主之物)을 대단히 아끼셨다. 그것은 살림살이를 잘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시물(施物)을 아낀다는 것뿐이다. 항상.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물방울도 또한 소화하기 어려우니라.>

하시는 서산대사의 말씀을 자주 하였다, 오직 아껴야 한다는 말씀이요, 그것은 저축하기 위해서 하는 말씀은 아니었다. 대중이 많이 지내기 위해서도 결코 아니었다. 오직 우리 스님은 오뚝하니 앉아서 화두만을 하셨고 물건을 아끼셨고 다른 생각은 없었다. 혹 누가 돈을 드리면 책갈피에 아무데나 꽂아 놓으신다. 그리고 찾지도 않으신다. 혹 내가 방을 청소하다가 돈을 발견할 때가 있다. 부끄러운 아야기지만 그때 나는 몰래 돈을 가지고 월정거리에 나가서 돈을 써버린 일이 한 번 있다. 딴 게 아니라 떡을 사 먹었다. 스님께서 돈 쓰시는 것을 못 보았다. 다만 수좌들이 가면 노자를 주셨는데 으레 2원씩 주셨다. 특별히 스님을 뒷바라지 하는 신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궁인(宮人)들이 기도 오면 약값이라고 얼마간 드리고 간다. 그것을 두었다가 길을 떠나는 수좌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우리 스님은 그렇게 오대산에서 지내시면서 삼십년을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6.25때 조용히 그 도량(오대산 상원사)에서 영겁(永劫)의 침묵 속에 몸을 숨기시고 마셨던 것이다.

나는 생각할 때가 있다. 저때에 피난을 나오시지 않고 왜 거기 그대로 계셨을까? 그러나 다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스님은 이미 때가 다 된 것을 아셨던 것이다. 이미 갈 때가 되신 것을 아시고 피난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시봉들, 대중들 모두는 피난시키시면서 당신께서는 그 방에 계셨던 것이다. 오직 시자 한 사람과 신도 한 분이 시중을 들었다. 시자가 낮에 죽을 쑤어 놓고 가서 여쭈었다.

<죽을 드시겠습니까?>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셨다. 시자는 죽을 가지고 올라가서 뵈었다. 그리고

< 스님 죽이 다 되었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이미 입적하셨던 것이다. 아, 우리스님은 이렇게 말없이 사시다가 말없이 가셨다. 韓龍雲스님이 <이 나라 천지 7천 승려 가운데서 뜻이 굳기는 한암스님 뿐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들었다. 담담히 선방에 앉아서 오직 좌선만 하시던 우리 스님은 변함이 없으셨다. 뒷날 종정 스님이 되셔도 그랬고 열반에 이르러도 또한 변치 않으셨다. 우리 스님은 지금도 적연 부동 상적광토(常寂光土)에서 소요하시리라.

수좌들과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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