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중국불교 교단의 변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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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리강좌] 중국불교 교단의 변천(2)
  • 해주스님
  • 승인 2007.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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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五代) 전란중에 존속된 과도기적인 불교를 지난 송(宋) 대의 불교는 오히려 중국불교로서의 특색을 굳히며 중국 사상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조가 세워지자, 태조 폐불은 정지하고 사원을 건립하여 경을 독송시키고 대장경을 주조하였으니 최초로 축판대장경(971─983)이 완성되었다.  앞서 본 바처럼 그후로 도 여러 차례 대장경 조인이 행해졌다.

오대(五代) 전란중에 존속된 과도기적인 불교를 지난 송(宋) 대의 불교는 오히려 중국불교로서의 특색을 굳히며 중국 사상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조가 세워지자, 태조 폐불은 정지하고 사원을 건립하여 경을 독송시키고 대장경을 주조하였으니 최초로 축판대장경(971─983)이 완성되었다.  앞서 본 바처럼 그후로 도 여러 차례 대장경 조인이 행해졌다. 오대(五代) 전란중에 존속된 과도기적인 불교를 지난 송(宋) 대의 불교는 오히려 중국불교로서의 특색을 굳히며 중국 사상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조가 세워지자, 태조 폐불은 정지하고 사원을 건립하여 경을 독송시키고 대장경을 주조하였으니 최초로 축판대장경(971─983)이 완성되었다.  앞서 본 바처럼 그후로 도 여러 차례 대장경 조인이 행해졌다.

  회창법난 이래 불교 제종파는 그 교세가 부진하였으나, 순수한 중국 불교라 할 수 있는 선종만은 계속 분파를 이루며 성행하였다.  정토신앙도 유행하긴 했으나, 그것은 정토종의 활동이라기 보다 선.교. 율이 화합된 신앙형태로서의  결사염불이었다.  그리하여 열렬한 재속신자가 거사로서 결사에 협력하여 정토신앙은 사회의 상하 전반 계층에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송대의 교단 경제는 당대를 능가하였다. 

당대 무진장원의 금융사업은 순연히 사원의 영리사업으로 바뀌었으니 장생전이라 하며, 사원경제의 유력한 재원이 되었다.   

  그리고 사유재산이 인정되어 귀족과 사원이 결탁한 공덕분사 또는 공덕원이 생겨나기도 하며, 송나라가 재정란을 구하기 위하여 실시한 매첩과 자의나 사호의 매출이 횡행하개 된다.

  원(元)대에 이르러서는 당말 이래 거의 독점해오다 시피한 선종의 뒤를 이어, 독특한 밀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티벳의 라마교가 유입되어 전성하게 된다.  재래불교는 교학적으로 점차 쇠퇴하여 갔으나, 불교교단의 외형과 경제적인 면에서는 송대를 계승하여 일층 발전하고 팽창하였다. 

  원 조정의 승불에 힘입어 대찰이 잇달아 건립되고 불사를 행하기 위한 기관이 마련되어 황제의 연수와 국가번영의 염원이 담긴 법회 불사가 빈번하였다.  그리하여 사원의 재산이 팽창하여짐에 따라 조정에서는 별도로 전국사원의 재산을 관리하는 기관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승니가 백만 명이나 되었다고 할 정도로 교단이 팽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 제실의 라마승 우대가 상궤를 벗어나 부작용이 극을 달하게 되자 라마교나 원조에 대한 한인의 반감이 커지게 되었다.  강남의 한인사회에는 반몽집단의 비밀결사가 유행하게되었고 드디어 백련교도인 주원장에 의해 명이 개국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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