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여,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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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여, 잘 가거라!
  • 관리자
  • 승인 2009.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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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나는 무심코 너를 또 볼 수 있는 기대에 부풀었고, 멀리 떠나지 않고 놀란 심장 고동이 채 가라앉기 전에 다시 반대방향에서 몰아닥치는 괴물한테, 너는 그만 기겁하여 다급히 옆 물도랑에 뛰어내렸지. 혹시나 다쳤을까, 네 모습을 보려고 급히 차를 세우고 우리 둘이 뛰어가 보았지만, 네 모습은 사라졌고, 수직으로 1m 넘게 세워진 깊은 콘크리트 도랑 벽만 눈에 들어오더구나. 물길은 들판을 가로질러 한없이 이어졌고, 건너편 야산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서, 과연 네가 거길 빠져 나와 무사히 네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단다.

우리가 도랑 안으로 뛰어든다고 해도 너를 찾아서 보내기도 어렵고, 갈길 먼 손님들한테 떼를 쓸 수도 없어서 그냥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섰지. 한참 네 생각에 잠겨 달리던 철마는 큰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하마터면 앞을 가로지르는 큰 차와 부딪칠 뻔했지. 게다가 목적지를 못 찾고 한참 헤매느라 자못 애가 탔어. 너를 놀라게 하고 네 안전을 위협한 죄업으로 즉각 닥친 하늘의 경고인 셈이지. 두 절을 찾은 뒤 저녁 먹고 헤어질 때까지, 우리 마음은 네 염려로 가득했어. 두 분은 물이 깊지 않은 데다, 가에 유채며 풀들이 자라서 네 먹이감도 있고, 수로 중간에 논의 물꼬와 이어지는 곳에 빠져나갈 통로가 있을 거라며, 애써 나를 위로하며 안심시키더라. 도랑이 네 모습을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가려주고, 너는 이리저리 찾다가 벗어날 만한 뜀뛰기와 꾀가 넉넉할 거라고 말이야. 글쎄, 확신은 안 서지만, 네가 정말로 그렇게 안전히 돌아가기만 바랄 수밖에.

30년 전쯤 귀향하던 고속버스가 여산 부근에서 길을 가로질러 날던 꿩과 충돌해, 꿩은 즉사하고, 버스는 앞 유리가 깨져 조심스레 정읍까지 온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인간이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을 파괴하여, 자연의 뭇 벗들이 움직이는 길마저 끊겨 삶을 위협받고 터전을 잃는구나. 농촌에서 삶의 젖줄인 물길까지 죽음의 상징인 콘크리트로 수직 제방을 만들어, 너희를 뜻밖의 함정에 빠뜨리다니, 하늘을 거스르는 문명이 마지막 절정을 치닫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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