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보현행원(14) -중생이 없으면 성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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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과 보현행원(14) -중생이 없으면 성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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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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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불교신앙

「중생」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귀찮은 사람들」이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여러 가지로 우리 주변에서 나에게 거슬리는 일을 하는 사람,나에게 도움을 받고자 바라고 있는 사람들, 자질이 부족하고 수준이 낮은 사람들, 등등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가득한데, 이러한 사람들이 모두 귀찮은 존재들인 것이다.

  이렇게 귀찮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가정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이 귀찮은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항상 바라기를 , 이와 같이 귀찮게 구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것이다.  나의 비위를 잘 맞추어 주고, 내가 하고자 원하는 일을 어느 때나 성취하도록 도와주고, 내가 바라는 일을어김없이 만족하게 해 주는 그러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내면 얼마나행복하겠는가 하고 바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종교적 기원(祈願)속에도 이러한 「악인(惡人)」들을 멀리하고 「선인(善人)」들과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과연 이 모든 「귀찮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해롭기만한 존재들인 것인가? 「보현행원품」은 우리의 이러한 생각과는 달리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계신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감명깊게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여러 중생들을 다 수순 (隨順)하여 가지가지로 섬기며 가지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공양하며,스승이나 아라한이나 내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이 받들되, 병든이에게는어진 의원이 되고, 길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가리키고 어두운 밤중에는 광명이 되고, 가난한 이게게는 보배를 얻게 하나니, 보살이 이와 같이 평등히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니라.」

중생 수순이 곧 부처님 공양

  우리가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것은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대 도사 (三界大導師)이시고 일체의 중생들을 자비로 감싸 주시면서 우리 모두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즐거움에 살도록 해 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모셔놓은 사원(寺院)을 찾아가서 정성 기울여 예배.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실지로 부처님께서는 온 우주의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신 까닭에,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공양올리는 것은, 곧 우주 전체의 생명앞에 예배드리며 공양 올리는 것이 되는 까닭에 이러한 불공 (佛供)의 공덕이 우리의 생각과 논리의 범주를 뒤어넘는 「불가사의 (不可思義)」의 공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불공 드리는 일이야말로 우리 불자들의 중요한 종교적 행사인 것을 우리는 잘 아라고 있다.  불공을 올림으로써 불자들은 소원을 성취하고 액운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불공을 올림으로써 불자들은 운명을 개혁(改革)한다.  이렇게 불공의 공덕은 무한대(無限大)이다.

  이러한 불공은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가서 올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모신 절(寺)을 찾아간다.  그러자니 자연히 「중생 있는 곳」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는 나머지 우리 주변의 중생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잊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피하고 싶어한다.  내지는 귀찮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주변의 중생들과 다투는 일을 일삼기도 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을 예사로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을 떠나 부처님을 찾아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이다.  불공 드리는 공덕이 무한대한 것이 까닭에, 중생을 떠나서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면, 그에 알맞은 공덕이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중생을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진리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가르침이아.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있는 가지가지의 중생들을 「평등히 이익되게 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부모나 부처님께 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하라고 이르신다.  그래서 이렇게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며 공양함이 되며, 중생을 존중히 받들어 섬기면 곧 ㅇ래를 존중히 받들어 심김이 되며, 중생을 기쁘게 하면 곧 일체 여래를 기쁘게 해 드림이 되리라.」라고 덧붙여 말씀하심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서 받아야 할 것이다.  참다운 불공은 중생을 저버린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중생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곧 부처님게공양 올림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병든이와 길 잃은 사람들

직장이나 가정에서 혹은일반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있게 마련이다.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말이 있다.  「미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인생의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나쁜 사람」이라는 말로 비난한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라고하는 것은 곧 그사람들은 도리에 어긋나게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살아가야 할 길을 닮아서 살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그들을 비난하는 이유이다.  또는 마음에 병이 들어 세상살이를 올바로 해 나가지 못한다고 하여 비난한다.

  이렇게 길 잃은 이들이나 병든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다투며 살아간다.  이 세상이 잘못되어 가는 이유는, 또는 우리 회사가가 번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가정이 답답한 이유는, 이렇게 길 잃은이, 병들어있는 이가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잘못된 책임 모두를 그들에게 씌우면서 비난한다.  또 그들을 헐뜯는다.  탓한다.  그러나 이렇게 길 잃고 헤매이는 이를, 이렇게 병들어 있는 이를,우리는 마구 비난하며 지내도 되는 것일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과 다투는 일을 일삼고 있는 「나」자신은 병든 사람, 길 잃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남을 헐뜯기에 앞서 우리는 「나」자신의 부족을 반성해보아야 마땅할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나」가 옳기만 하였고 그들은 모두 그르기만 하였다 하더라고, 그들을 바른 길로 들어서게 해 주지 못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의 역량(力量)부족으로 그들을 병든채로 방치하고 있고, 길 잃은 상태에서 헤매이게 놓아 둔 것만으로도, 당연히 그분들에게 미안한 일이겠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비난하고 있을 쑤 있겠는가?

  우리 주변의 소위 「나쁜 사람」들을 우리가 나무라기 전에, 헐뜯기 전에, 우리는 그들을바른 길로 서게하고, 병 고치는 좋은 대원이 되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아가게 해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경에서 가르치신 바에 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참 불공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나쁜 사람」처럼 나타나 보이는 사람들은 참으로 「나쁜사람」인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부처님께 공양올릴 기회를 마련해 주는 고마운 분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밝은 눈으로 보게 될 때,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 나에게 거슬리는 사람, 도리에 어긋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원수가 아니고 참으로는 나의 으니인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고마운 은인들을 우리가 어찌 미워하거나 원망할 수 있겟는가?  그분들을 섬기고 공양하는 가운데에 우리의 불도 수행은 완수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오직 고마운 분들로 갸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 나쁘게 구는 사람들이 없으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옳은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들로 해서 우리는 부처님게 공양 올리는 수행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직장에는, 가정에는, 거리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가득한 것이다.  「보현 행원품」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러므로 보리(菩提) 는 중생에 속하는 것이니 만약 중생이 없으면 일체 보살이 마침내 무상 정각(無上正覺)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직장의 상태가 완전히 이상적 상태에 들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벼로 할 일이 있을 것이 없다.  이상적 상태가 아니라고 하여서 그 직장을 떠날 생각을 하거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을 비난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 직장을, 그 상사를, 바른 길로 이끄는 책임은 나에게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참불공이다.  그러한 일 없는 성불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佛光)

김경만(金慶萬) .1930년 충북 음성 출생 .고려대 상대 졸 .불광법회, 원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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