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5.중도(中道)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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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리강좌] 5.중도(中道)의 선언
  • 해주스님
  • 승인 2009.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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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하신 초전법륜(初轉法輪)의 내용은 중도(中道)이며 사정제 팔정도였다.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부처님의 방편설이 중도의 선언인 것이다.

즉,비구들이여, 출가한 자는 두 극단에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오로지 집착함은 비열하고 천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않고 또 무익하다. 그리고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은 다만 괴로울 뿐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두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뜨게하고 지혜를 생기게하며 적정과 증지(證智)와 등각(等覺)과 열반(涅槃)에 도움이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내가 깨달은 바 중도(中道)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도(道)니라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이 그것이다. 「여래소설결(如來所說經)」

이 말씀에 이어서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사성제 법문을 설하고 계신다. 이처럼 온갖 욕망의 쾌락와 금욕적 고행의 두가지 극단적인 입장에 대하여 비판하고 새로운 실천론인 중도를 제시하셨다. 그 길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정등각(正等覺) 열반(涅槃)을 얻으셨던 것이니. 그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전개하면 팔정도가 됨을 보이고 계신다. 부처님 최초의 설법이 바로 ‘두가지 극단에 친근하지 않는 중도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이 고락중도설(苦樂中道設)이 불교에서의 중도설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 중도의 입장은 부처님께서 제자인 소나에게 하신 유명한 ‘거문고 줄의 비유’ 말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거문고를 뜯으며 부유하게 지내다 출가한 후 필사적인 각오로 수행하여도 자유의 경지를 얻지 못해 초조한 나머지 환속할 것을 결심한 소나에게도 부처님께서는 역시 중도의 실천행을 권하셨다. 거문고를 뜯는 일조차 줄이 적절하게 죄어 있지 않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듯이 도(道)의 실천도 마찬가지이니,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나 자진해서 고행에 열중하는 것이나 어느 것도 정당하지 못하다.

너무 괴로움을 겪으면 마음이 평정할 수 없으며 지나치게 긴장을 풀면 또한 게을러진다고 하시면서 중(中)을 취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극단을 떠나 중도에 처하는 그 때에 바른 실천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줄의 환급이 알맞아서 미묘한 제 소리를 낼 수 있는 거문고와도 같은 실천의 양상, 그것이 중도이다.

따라서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중(中)은 정(正)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곧 중도는 정도(正道)이니, 중도의 원리가 여덟가지 정도로 구체화 되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도’ 즉 ‘팔정도(八正道)’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팔정도란 첫째 정견(正見)이니 바르게 본다는 뜻이다. 진리를 똑바르게 응시함을 말한다.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의업(意業)이며, 정어(正語)는 선한 구업(口業)이며, 정업은 선한 신업(身業)이니, 이 셋은 바른 행위를 의미한다.

정명(正命)은 바르게 생활하는 것으로서 바른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정정진(正精進)은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고 정념(正念)은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며 끝으로 정정(正定)은 바르게 집중한다는 말로서 이 셋은 바른 수행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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