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암에서 달빛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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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암에서 달빛을 만나다
  • 관리자
  • 승인 2009.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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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禪語遊戱]

송강 정철(1536~1593)은 「관동별곡」에서 이 광경을 “명월이 온 세상에 아니 비친 곳 없으니 … 흰 연꽃 같은 달덩이를 어느 누가 보내셨나. 이렇게 좋은 세상을 다른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 싶구나.”라고 했다. 하지만 당나라 백낙천(772~846) 거사는 “늘어선 사람들이여! 달빛을 보지 말라(不比人間見). 세상의 티끌이 맑은 빛을 더럽힌다(塵土汚淸光).”라고 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우면서도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함께 바라보던 청춘남녀들은 조선 여류시인 능운(凌雲)의 마음일 게다.

달 뜨면 오신다고 님은 말했는데(郎云月出來)

달이 떠도 님은 오시지 않네(月出郎不來)

생각건대 틀림없이 님 계신 곳은(相應君在處)

산이 높아 달이 늦게 뜨는 까닭이죠(山高月上遲)

바다 위 보름달을 보니 저절로 수월(水月)보살과 만월(滿月)보살로 이름붙인 이유를 제대로 알 것 같다. 「벽지불인연론(퇳支佛因緣論)」에 나오는 ‘월출(月出)’은 바라나국의 왕이었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 달이 떠올랐다고 하여 그 이름을 갖게 된 것도 부모님의 감동이 지금과 같은 까닭일 게다. 돈황 근처 명사산(鳴沙山)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를 ‘월아천(月牙泉)’이라고 작명한 그도 그랬을 것이다.

일행들과 여장을 풀고 저녁 먹고 차 마시고 이런저런 애기를 나누다 보니 자정 무렵이다. 잠을 청하긴 바깥경치가 너무 아까워 혼자 가만히 홍련암으로 갔다. 관음보살이 해변가 굴 속에 항상 머물고 있는 까닭에 창건주 의상 대사가 그 위에 암자를 지었다. 바닥에는 손바닥 두 개만한 여닫이 쪽마루를 만들어 누구나 열어 관음굴을 친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요즈음 그 면적만큼 유리로 바꾸어 여닫는 수고 없이도 곧바로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하지만 그만큼 운치는 없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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