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희 비추는 보름달을 꽃등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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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희 비추는 보름달을 꽃등 삼아
  • 관리자
  • 승인 2008.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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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이 들려주는 절집 이야기 9 / 노을과 추석

각각의 빛을 발하며 살아있는 별

9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것 같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워낙 8월까지 바쁘게 지낸 터라 지나온 시간이 먼 이야기 속의 일처럼 아득하다. 시골 조그마한 절에서 한여름 두 달 동안 날마다 100여 명이 넘는 대중들과 지내며 전쟁을 치르듯 살았다. 한문학당이나 참선수행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진행하는 버거운 나날이다 보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새롭게 찾아온 9월이 반갑다. 게으름을 좀 부려도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 같다.

이렇게 가을이 찾아오면 내가 즐겨하는 일과가 있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만하당(滿霞堂, 노을 가득한 집) 마루에 걸터앉아서 마냥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날마다 서쪽으로 지는 해이지만 초가을 날씨와 만나면 그 색이 참으로 곱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과 구름이 만나서 살아있는 산수화 속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름 형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천변만화의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노을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까지는 약 1시간. 해거름 녘 그 한 시간 동안 묵연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 저편부터 하나둘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진도의 바닷가 마을에도, 작은 섬 상마도에도, 아랫마을 서정리에도 별빛들이 반짝인다.

미황사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앞을 가로막는 게 없어 시야는 거칠 게 없다. 위로도 아래로도 별빛뿐이다. 허공 중에 떠있는 뭇 행성들이 우주를 밝히는 별이듯 마을 가운데 불빛을 내걸고 빛을 내는 저 집들도 모두 다 별이다. 그 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머물렀으되 머무는 바 없이 각각의 빛을 발하며 움직이는 별, 살아있는 별이다.

어떤 스님이 운문 선사에게 물었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다 떨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운문 선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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