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 인물전] 만공(滿空)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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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 인물전] 만공(滿空)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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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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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불인물전

      1. 발자취의 안팎

  만공스님은 누구나 잘 아는 터이지만 특히 근대 선계(禪界)에 중흥조로 높이 추앙을 받는 경허(鏡虛)선사의 법맥(法脈)을 이어 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게 한다.  무엇보다도 법맥을 이은 당사자이기에 그는 일생을 두고 선계에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납자(納子)와 후인에게 두루 채찍질을 가하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선(禪)의 생활화와 보급화에도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큰 별이 태어날 즈음에는 우리나라 안팎의 정세는 대단히 어지럽고 어려울 때 였다. 구(舊)한말 조선왕조 후기는 여러 방면에서 안정을 잃고 혼란을 거듭하였으며 밖으로는 서양의 물질적 현상 앞에 저항을 느끼면서도 이웃 일본의 태도도 의식해야하는 복잡한 소용돌이 속이었다. 참으로 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성을  필요로 하고 집안이 어려우면 효자를 생각하듯, 무엇인가 갈구하던 一八七一년 三월 七일, 전라북도 태인읍 상일리에서 장차 정신세계에 지도자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여산 송씨로 이름은 신통이고 어머니는 김씨인데 꿈에 영용(靈龍)이 구슬을 토하는 광명을 보고 잉태하였다 한다. 만공의 세속명은 도암(道岩)이요 법명은 월면(月面)이며 만공은 三四세 때 경허선사로부터 받은 법호이다.

  十三세에 설을 절에서 지내도 좋다고 하여 금산사(金山寺)에 간 것이 인연이 되어 집안의 만류도 뿌리치고 밤에 몰래 출가 하였다고 행장(行杖)엔 쓰였으나, 그보다는 시끄럽고 혼란한 세태에 눌러 앉아 범인으로 지내게끔 그의 본래적인 예지는 그냥 버려두지를 앉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 찾아 어디론지 가야만 했으며 그리하여 지혜의 눈을 밝혀 불안에 떠는 중생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염원이 솟구쳐 올랐을 것이리라.

 그의 발길은 불타는 염원을 안고 전주 봉서사로 갔으나 맑지 못한 곳임을 알고 송광사를 거쳐 쌍계사에 이르렀다. 이것에서 진암노사(眞岩老師)의 반김을 받아 계룡산 동학사로 함께 가서 있게 되었다. 마침 체격이 당대하고 눈빛이 빛나는 객승이 왔는데 그가 바로 서산 천장사(天藏寺)에서 온 경허스님이었다.

 눈빛이 밝은 경허스님을 알아 본 진암노사는

 「매사에 총명하기만한 이 아이(만공)를 천거하오니 잘 인도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이 얼마나 바라던 기쁨인가?

 그후 만공은 천장사에서 경허스님을 계사(戒師) 하여, 경허의 친형 태허(太虛)스님 밑으로 十四세에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당시 천장사에는 은사(恩師) 태허스님이 주지로 있었기 때문에 천장사는 수계사(受戒寺)면서 본사가 된 셈이다.

 만공이 구도(求道)에 열중한 지 어느덧 十년이 흘렀고 二三세가 될 무렵에 더욱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만법귀일(萬法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요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一이란 하나만 알면 모든 것을 걸림 없이 알아 맞힌다는데, 도대체 그 뜻이 무엇입니까?」

 지나가던 어느 소년의 이와 같은 물음에 답을 못한 만공은 꽉 막힌 채로  만법귀일(萬法歸一)에 몰두하게 되었다. 더욱 조용히 파고 들고자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자리를 옮겨 노전(爐殿)을 맡아 보면서 용맹정진하였다. 드디어 25세의 만공은 어둠이 가시고 밝음이 떠오르는 뚜렷한 일원(一圓)상속에서 일체유심조(一體有心造)의 소식을 꿰어 뚫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빈(空)산에 가득한 기운은 고금 밖에 통하고

 흰 구름과 맑은 바람은 절로 오가네.

 달마는 무슨 일로 동쪽에 왔는고

 닭은 축시에 울고, 햇살은 인시에 떠오른다.

 (空山理氣古今外 白雲風自去來 何事達摩越西天 鷄嗚丑時寅日出)

 이렇게 초견성(初見性)을 한 만공은 구름처럼 떠돌며 물 흐르듯 행각(行脚)을 하려 했으나 당시 어지러운 세상에 동학혁명까지 겹쳐서, 스님을 찾고 도를 묻는 거룩한 도행(道行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가까운 마곡사(麻谷寺)에 가서 一년간 보임공부(保任工夫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갈망하던 경허스님이 들린 것이다.

 정중히 인사드리고 깨친 바를 낱낱이 알리니, 제자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불꽃 속에서 연꽃이 핀 것과 같다」고 칭찬하고는 물어 이르되

 「여기 부채와 등토시가 있는데 부채를 등토시라해야 옳으냐, 등토시를 부채라 일러야 옳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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