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 月 禪 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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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 月 禪 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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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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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불교 인물전

    家系 없는 한평생

  아다시피 선승(禪僧)에게는 「문자」라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기풍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풍은 그대로 선승들이 걸어간 자취를 적어 놓는 일에까지 연장이 되는 까닭에 후생의 안타까움은 도를 더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지나간 고승의 면모를 알고 싶어 한들 그것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도무지 남아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단편적인 에피소드, 뒷방에 앉아 몇마디씩 주고 받은 에피소드 이외엔 별로 전하는 말이 없는 것이다.

  여러 방면에 걸쳐 왕조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던 19세기말 내지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의 자료는 더구나 희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번에 말해 보고자 하는 水月스님에 관한 자료도 또한 그러하다. 수월, 수월하고 모두들 수월스님이 고승이었느리라는 말을 하지만, 실상 그의 어떤 면이 고승다운 것이었던가를 정확하게 입증할수 있는 근거를 대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수월스님에 관한 한 정확한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보아서 무방하다.

  1855년생, 그리고 水月 . 音觀이라는 법호와 법명이 전할뿐, 누구를 부모로 하고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씨조차  그에게는 분명한 글자가 있지를 아니하다. 全씨, 田씨, 혹은 金씨, 또는 祭씨라, 崔씨라 하는 등등 숱하게 많은 글자들이 입으로만 오르내릴 뿐이다. 全과 田은 소리가 같고 全과 金은 모양이 비슷하거니와,祭水月 내지 崔水月이란 대체 무엇으로부터 연유된 글자인지

「나」라는 존재를 일찍이 내세워 본 일이 없는, 그리하여 세연 (世緣)을 마치는 날까지 오직 남을 위한 봉사 이외에 생각해 본 일이 없는 수월이매, 성씨 따위에는 마음을 써 본일이 없는 탓이었던가. 아무튼 가문 내지 출신 성분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채로, 혹은 고아였다는 구전 (口傳)까지도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소년시절은 매우 불우했던 것이 사실인 듯하다.

  어떤 노장스님의 구술을  빌면 젊어서 머슴살이를 많이 하였다 한다. 그런데 고달픈 머슴을 사는 그에게 한번은 아주 중요한 계기가 생겼다. 그것은 곧 어떤 날 우연히 절구경을 갔다가 무슨 법화산림(法華山林)인가 하는 모임을 보게 된 일이었다. 원래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그였지만 그러나, 이 법화산림을 한번 본 뒤로는 무엇 때문인지 그것이 늘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한다. 

  『나는 도 (道)라는 걸 깨칠수 없는 사람일까 한평생 이렇게 머슴살이만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며칠 동안 사뭇 고민까지 하게 됐었다. 그러다가 어떤날 그는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했다.

  『내일부턴 머슴살이를 그만 두자. 그리고 도인(道人)을 찾아 마음을 닦자』

  이렇게 결심한 그는 곧 주인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래와 같이 하직 인사를 했다.

  『   『   『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제게는 이제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새경도 그만 두십시오 그러나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걸망이라는게 있지요 그 걸망을 하나만 만들어 주십시오』

  몇해 동안 살아온 머슴의 새경도, 그리고 보태주는 노자도 물리치고 그는 오직 하나 걸망을 지고 그 집을 나섰다. 때는 그가 29세 되던 1883년, 간곳은 충남 천장사(天蔣寺)였다. 

  피나는 天手呪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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