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님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스님(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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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님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스님(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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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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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학인(學人) 시절

     [26] 열반에 드시던 날

   정읍 내장사에는 옛부터 훌륭하신 스님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은 한국 제1의 단풍의 명소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백학명(白鶴鳴) 스님의 도량인 것을 불자로서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백학명 스님에 대한 나의 신앙을 늘어놓을 지면은 없지만 학명 스님 뒤에도 훌륭하신 스님이 많이 계셨다.

   우리 스님이 내장사로 가신 것은 아마도 계미년(1943년)으로 기억된다. 그때 내장사 주지는 정병모 스님이었는데 참으로 학명 스님 도량의 스님답게 청정한 비구 스님이었다. 우리 스님에게 직접 경을 배우지는 않았어도 우리 스님을 항상 흠모하여 왔는데 가까이 모시고자 하여 우리 스님을 모셔 가기에 이르렀다. 내장사를 일신 중건하고 스님의 처소도 새로 만들어 불편이 없도록 만반 준비를 했었다. 우리 스님은 대원 강원을 폐하면서 정병모스님의 뜻을 받아 노후를 내장사에서 지내기로 하셨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우리 스님의 일상생활은 예나 다름없이 맑으시고 건강하였다.

   세수 80이 되시던 무자년 2월 29일, 우리 스님은 홀연히 고요로 돌아가셨다. 화장실에 다녀오시어 마루에 오르시면서 주저 않으시더니 그것으로 40분 만에 영영 적묵의 땅으로 떠나신 것이다. 그때는 우리 사형 운기 스님이 모시고 있었는데 아무 말 없이 40분 만에 잠들 듯이 가신 것이다. 무상(無常)의 환신(幻身)을 나투시어 그같이도 비환(非幻)의 도를 설하시더니 이제 정녕 불멸의 도리를 몸소 나투신 것이었다.

   해는 이렇게 지고 달은 이렇게 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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