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연수선사의 생애와 사상 - 萬善同歸集을 중심으로-
상태바
영명연수선사의 생애와 사상 - 萬善同歸集을 중심으로-
  • 관리자
  • 승인 2007.11.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선동귀집(5)

   [11] 모든 것이 수행의 문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실 때는 언제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동시에 갖추어 설하셨다. 그것은 곧 마음으로부터 경계를 나타내므로 경계 그대로가 마음이요, 모든 행동으로부터 낱낱 이치가 성취되므로 자타(自他)가 곧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 한결같이 무생법을 관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만 내심(內心)의 이익 됨만을 믿으려 하지 바깥으로 부처님의 위신가피지력(威信加被之力)은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본래 안과 밖의 구별은 없지만 엄연히 안과 밖의 차별이 있는 것이니 안으로는 부처의 해탈법을 자심행(自心行) 가운데서 구하며 밖으로는 부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고 이끌어 주시는 감응이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닦아 나아가는 문이 모두가 온갖 반연의 소생(所生)이요 하나도 독립함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스스로의 힘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반드시 반연이나 방편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관재(官災)를 입어 구속되었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풀려날 수가 없다면 반드시 힘 있는 사람의 구언을 청하는 것과 같으며 물건을 운반할 때 자기 힘에 알맞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으나 무거울 땐 반드시 여러 사람의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서 비로소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만 스스로가 가만히 자기의 역량을 헤아려 볼 것이요. 마침내 나의 집착된 소견만을 고집하여 다른 이까지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모든 방편문은 오직 올바른 해탈의 성취를 위하여 시설한 것일 뿐 어떤 시비에도 얽매일 바가 못 된다. 참으로 진심을 깨닫고 본다면 곧  얽매여 집착할 아무런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론(智論)에도 이르기를 「버리지 않은 것은 제법(諸法) 가운데 모두 조도(助道)의 힘이 있는 까닭이며 집착하여 수용(受用)치 않는 것은 제법의 실상이 필경 공적하여 얻고 취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12] 올바른 염불법에 대하여

  : 경에 이르기를 「몸의 실상을 관찰하듯 부처를 관찰함도 또한 그러하여 한생각도 내지 않으면 천진(天眞)하여 단박에 깨끗하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다른 부처님의 명호나 외우면서 생멸심을 조장하겠는가. 이미 선정(禪定)을 방해하고 다만 음성만 따르는 짓이라 물이 움직이면 바닥은 더욱 흐려지거니 그로서 어찌 근본에 이를 수 있다 하겠는가.

  답 : 말이나 음성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고방(庫房)과 같은 것이라 역시 해탈의 문이 될 수 있다. 일체가 소리로서 왕래함에 소리자체가 곧 법계가 되는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낱낱의 모든 법이 또한 그 가운데 낱낱이 일체법을 포함하여 있다」고 하였으니 이러므로 한마디의 언음(言音)에도 둘러쌈이 제한이 없어서 시방세계가 다 구족하며 겸하여 삼제(三諦)의 이치가 두루 원만한 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것은 부정하고 저것만 긍정하여 모양을 떠나서만 진(眞)을 구하려 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그 바닥의 근원은 살피지 않아 「말이 없는 것만이 옳다」는 실책에 빠지겠는가. 경에 이르기를 「한 생각 처음 일어날 때에 처음이라는 상(相)이 없는 것을 곧 참된 호념(護念)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생각을 쉬고 음성을 없애야만 비로소 실상(實相)에 계합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장엄문(莊嚴門)안에는 온갖 만행이 원만히 갖추어 있고 진여해(眞如海) 안에는 한 터럭도 버리지 않는다 하는 것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