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여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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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여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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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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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 불자 만세 *****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16세기초 중종 년간의 일이다. 서울의 남산 중턱에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이름을 백광산이라 하였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민씨라고 했다. 그는 생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허구 헌날 책만 읽었다. 부인 민씨가 생계를 이어 나갔다. 이웃집 허드렛일이며 친정 집의 일까지 도맡아 겨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곤 했다.

민 여인은 어릴 때부터 착한 마음씨에다 부처님을 믿는 독실한 불자였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절에 가는 것은 아예 포기할 정도였다. 그녀는 집에서 기도하고 집에서 염불하고 집에서 경을 읽었다. 참선도 집에서 했다.

그녀는 남편의 영달을 위해 기도했다. 절에 나가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워 더욱 열심히 부처님을 그리워하며 기도했다.

“부처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게 해 주십시오. 제 남편이 벼슬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되면 부처님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나이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스님네에게도 공양하겠습니다. 불사에 힘쓰겠습니다. 절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도 성심껏 공양하겠습니다. 부처님, 도와주옵소서. 간절히 간절히 비옵니다….”

그녀는 기도하고 염불하고 경을 읽고 참선을 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비로운 마음,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제일의 염불이요 기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일 년, 남편 백광산은 과거에 응시했다. 기도의 공덕이었을까.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마침내 강원도 울진 부사로 부임했다. 둘은 너무나도 기뻤다. 부임지로 향하는 발걸음은 나는 듯 가벼웠다. 풀잎도 나무도 쏟아 붓는 햇살기등도 모두가 두 사람을 축복해 주었다. 세상이 온통 그들 둘만의 것이었다.

울진에 이르러 축하를 받고, 고을의 형편들을 두루 돌아보았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사흘 째 밤 백부사는 신음소리 하나 없이 숨을 거두었다. 놀란 것은 부인 민씨만이 아니었다. 지방관들을 비롯해 온 고을 주민들이 이 소식을 듣고 동헌으로 모여들었다. 이제껏 한번도 없던 일이었기에.

정신없이 사흘을 내리 울다가 민 여인은 모여든 관족들과 육방권속들에게 물었다.

“ 이 고들에도 절이 있을 것이오. 특히 영험한 절이 있다면 말해 보시오.” 이방이 대답했다

“예, 불영사(佛影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절로서 많은 영험설화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대웅전 앞에 정중 탑이 있고 그 탑을 위하여 세운 탑 전 내에 모셔진 부처님이 영험하다고 합니다.” 민 여인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남편이 과거에 급제하여 임지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들뜬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다. 부처님의 은혜로 영달을 입고도 그 공덕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참회의 눈물만을 짓고 있을 새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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