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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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 관리자
  • 승인 2007.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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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원효성사

한동안 두 별을 관찰하며 이런 저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데 명랑 노장은 연방 입을 다시며 탄성을 지른다.
“아! 저런 ··· 저 별이?”
무슨 뜻인지 모를 탄성과 함께 내뱉는 노장의 말이 귀에 와서 닿는다.
“노스님, 또 천문을 보십니까?”
“그래 그래, 천문을 보아.”
“또 다른 기이한 사건이라도 있는지요?”
“실은 말일세, 아까 얘기해 주려다가 심상이 곁에 있기에 일러주지 않았는데, 하늘의 조화가 무궁무진하거든.”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얼마 전에 여기 동방에 새로운 위인이 강림할 징조가 보였다네.”
“화엄종주가 두 사람이나 난다 하시구서요.”
“그건 이미 탄생하여 성장 중이시고 미래에 아주 가까운 미래에 동양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상서란 말씀이야.”
“어느 별이 그렇습니까”
“머리 위 한가운데에 해동화엄종주의 별이 있고 또 거기에서 서쪽으로 약 한뼘 간격으로 흰 빛을 내는 별이 있지 않은가?
그 별은 작년까지두 별로 빛을 발하지 않던데 금년에 들어 찬연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어.“
”그 별 이름은요?“
“문창성(文昌星)이야.”
“문창성은 원래 이름있는 별이지 않습니까?”
“아무렴 이름이 있구말구.”
“이름이 있는 별이니 당연히 다른 별에 비해 빛나겠지요.”
“아냐, 그렇지 않아. 여기 동양에 강림하려 하면 동양에 빛을 발하구 만일 서양에 빛을 발할 적에는 서양으로 강림하게 돼요. 이제 동양으로 광채를 내는 걸 보니 동양 어느 나라에 내려오실 모양이야.”
“문창성은 장군의 별이 아니라 문사(文士)나 학자의 별이라지요?”
“그렇지, 문창성군(文昌星君)이 강림하시면 그 나라는 학문이 성하구 태평성대를 이루게 될 게야.”
“저 별이 혹시 우리 신라에 강림하게 됩니까?”
“동양의 어느 나라에고 강림하게 되거든, 당나라에도 우리나라에도 아니 왜국에도 말일세.”
“···.”
“그런데 우리 신라에는 저 성군을 맞이할 만한 인재가 없다네. 본시 큰 별은 그를 맞이할 그릇이 없으면 아예 강림하질 않거든, 신라에는 문창성군을 안을 그릇이 없단 말이야.”
“뭘 그럴라구요?”
“아냐 우리 신라에는 큼지막한 인물이 많지 않아. 근래에 와서 우리 불문(佛門)에 좋은 그릇들이 모여들고 있긴 하지만 나라를 짊어질 인물은 태부족이야. 이런 때 문창성이 신라에 강림한다면 정말 큰 복이 될 터인데···.”
“노스님, 문창성을 얻을 인물은 어느만큼의 인물이라야 되는지요?”
“적어두 원효대사만큼은 되어야 하거든.”
“예? 저 같은 인물요?”
“암, 화엄종주만은 돼야 문창성군을 받아들일 수 있어.”
“노스님, 농담하시는 거지요?”
“농담? 핫핫핫핫···.”
“소승을 시험하시려는 겁니까? 아니면 놀리시려는 것입니까?”
“허- 그게 무슨 말씀이야? 대화엄종주를 시험하다니 당키나한 말씀인가? 더욱이 대화엄종주를 놀리다니?”
“그럼 그런 말씀은 않으셔야지요.”
“나는 천기(天氣)를 누설하기 했지만 언제나 허튼 말은 않아. 나라를 위해서 보탬이 되는 길이기에 우정 천기를 누설한 것이야.”
“소승은 아무 쓸모없는 위인에 불과합니다.”
“아야 아냐, 원효 스님이 아니면 저 문창성은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 밖에 없어. 원효대사, 침착하게 생각해 보아요. 나라와 겨레를 위해 좋은 일할 시기가 왔어. 한번 보살심을 발하여 보살도를 실천해 보아요.
저 문창성은 한두 달 만에 붙들지 못하면 다른 데로 이동해 버릴거야. 사내 대장부로 태어났으니 큰 일을 한번 해보라구. 응?“
“···.”
원효는 말문이 막혔다. 명랑 노장의 권유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실로 어리둥절했다.
신라에서 문창성의 정기를 붙잡을 인물로는 원효 자신밖에 없다는 말이 그리 싫지는 않았지만 문창성군을 붙들기 위해서는 사문(沙門)이 지켜야 할 계율을 깨야 하지 않겠는가?
계율은 사문의 생명이다. 자기의 생명을 던져 나라와 겨레를 위해 위대한 인물을 맞아들여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여지껏 사문으로서 쌓은 탑을 깡그리 무너뜨려야 할는지도 모를 일을 쉬이 감행한다는 것은 생각이 모자란 사람이나 할 짓이다.
원효는 명랑노장에게 지금 당장 하겠다느니 못 하겠다느니 하는 대답을 구태여 할 일이 아님을 느끼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명랑도 원효의 심중을 꿰뚫은 듯 더는 권유하지 않고 다시 염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대인물을 맞아들이는 것이 어찌 억지로 되는 것이랴?
“나무 미륵존불 미륵존불 미륵존불···.”
다시 두 사람의 음성이 한데 어루러져 고성염불이 이어진다.
새벽 달이 두 사람의 염불소리에 깨어나 동녘 하늘에 얼굴을 내민다.
명랑노장은 새벽 달을 보자 염불소리를 그치고 달을 향해 예배를 올리며,
“나무 당래용화교주 미륵존불(南無當來龍華敎主彌勒尊佛).”하고 큰소리로 부른다. 이에 맞춰 원효도 똑같은 음성, 똑같은 동작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러기를 한 시간 남짓.
사위가 완전히 밝자 어디서 모여왔는지 이름 모를 산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새 아침의 찬송가를 읊조린다.
잠에서 깨어난 심상의 귀에는 그 산새들의 노랫소리도 두 스승의 음성에 동화되어 ‘나무 당래용화교주 미륵존불’하고 염불하는 것 같았다.
예배가 끝나자 명랑 노장은 미륵존불을 마주한 채 우뚝 서서 부동의 자세가 된다.
원효도 물론 노장의 거동을 따라하였고 심상도 스승의 모습대로 우뚝 서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의 공기 특히 산상의 공기는 차라리 싱그러웠다. 심호흡을 하기 수십 번이 되자 마음은 더욱 평온해지고 환희가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삼화령 미륵세존님의 자비로운 얼굴에 햇살이 비추이자 명랑 노장은 다시 삼배를 드린다.
원효와 심상도 물론 그를 따라 절하였다.
이윽고 월명노장이 원효에게로 몸을 돌렸다. 동안백발(童顔白髮)이라더니, 명랑 노장은 정말 그러했다.
아무런 구김이 없고 번뇌가 스러진 천진난만한 모습인 노장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함을 본 심상은 저절로 몸을 굽혀 예배하게 되는 것이었다.
원효도 정중히 삼배를 드린 다음,
“노스님 법문은 실로 바다보다 깊으십니다.”
“허허허- 화엄종주에게 칭찬을 다 듣다니- 허허허-.”
“미륵세존이 노스님이신지 노스님이 미륵세존이신지 제 무딘 눈으로는 분별하지 못하겠습니다.”
“허허허, 분별하여서 뭘 하려구? 허허허-. 모두가 그림자에 불과한 걸 허허허,”
“그림자라 하여도 소승도 노스님 경지에나 올랐으면 싶습니다만.”
“이제는 이 늙은이를 마구 놀리누먼. 허허허- 대화엄 종주는 아무나 되는지 아는가, 허허허.”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 천진스러운 모습에 심상도 마음이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원효 법사.”
이번에는 웃음을 뚝 그친 명랑 노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등을 널리 보급하시오.”
“소승이 무슨 재주로요?”
“재주로 하는가, 법력으로 하지.”
“반딧불만한 광명도 발할 수 없는 법력으로 어떻게 용화세계나 도솔천 내원궁(內院宮)의 경계를 측량하리까?”
“허어-, 겸사가 분수에 넘는군.”
“그럼 노스님께서 미륵세존의 공덕을 설하여 주십시오. 배워서 익히고 익혀서 성취한 다음 보급하옵지요.”
“새벽 내내 설한 것은 모두 듣지 못하였던가? 아니 그보다도 원효 법사가 원력을 세워 찾던 미륵세존은 어디에다 팽개쳐 버리고 날더러 또 설하라 하는고?”
“···.”
원효는 대답대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랬더니 명랑 노장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런 웃음을 짓는다.
한창 논쟁(?)하다 말고 미소짓는 두 스승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심상은 그저 어리둥절하였다.
언어로써 표현하는 것도 미처 다 모르는 터에 언어 이전의 소식을 그가 어이 알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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