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밝히는 등불]서강대 박광서 교수
상태바
[오늘을 밝히는 등불]서강대 박광서 교수
  • 관리자
  • 승인 2007.10.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력으로 사는 삶은 아름답다

소년의 나이 열여섯 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을 게다. 부쩍 생각이 깊어진 사춘기 소년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깊이 마음이 끌리었다. 이 나라의 정신적 뿌리찾기에 열중하던 소년은 불교를 만났다.

불교는 이 땅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온 원초적 힘이요, 겨레혼의 위대한 뿌리였다. 소년에게 감동의 자체로 다가온 부처님의 생애는 소년의 삶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종로 대각사에 있었던 룸비니 불교학생회는 소년의 가장 훌륭한 보금자리였다. 소년은 그렇듯 불교의 강가에서 살면서 꿈과 희망을 키워갔다. 소년의 꿈은 당찼다. 그것은 커다란 원력이었다.

‘내 올곧은 불제자 되어 현대문화의 위기상황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극복하리라, 현대 한국사회에 새로운 불교문화의 꽃을 피우리라’는 대원력은 소년이 스스로 다부지게 질머진 새희망의 짐이었다.

소년은 성실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미국 유학 가서 갖은 고생 끝에 그 어렵디 어려운 물리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미국 MIT공대에서 연구원 생활도 했고 고국에 돌아와서 교수가 되었다. 소년은 힘껏 노력하여 자신의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소년은 자신의 행복에만 안주할 수 없었다. 원력이 있기에, 새희망의 짐을 지고 있기에….

박광서 교수(서강대 물리학과장. ‘우리는 선우’ 공동대표). 위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를 만나보면 그가 얼마나 불교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참된 불제자인지를 금새 알 수 있다. 하기야 남들 다 부러워하는 박사학위 받고는 이제야말로 출가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을 했고, 교수가 되었으면서도 부처님 일 하는데 정신이 팔려 마흔 살에 늦장가를 간 그의 불타는 신심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미 고등학교 때 내 인생을 걸 만한 것은 불교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지요. 제가 물리학을 전공한 것도 불교를 제대로 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