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새벽에 엄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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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새벽에 엄마 보세요
  • 관리자
  • 승인 2007.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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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엄마!
눈앞이 캄캄해지고 TV에서 보았던 것처럼 머리 주위에서 번쩍번쩍 별이 돌아가는 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란 것을 제가 처음 알았던 때는 아마도 세 살 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놀기만했던 저를 손목을 잡아 끌어 골목에 내다 놓으시고선 몇시 까지는 그곳에서 놀아야만 한다고 엄하게 말씀하시던 엄마의 명령(?) 때문에 마지 못해 동네 꼬마들과 섞여 놀아야만 했던 그날.
“야! 우리 아랫동네 아이들과 놀자! 갔다가 금방 돌아오면 되잖아?”
“그래.” “그래 나두 좋아.”
저보다 두세 살 많은 꼬마들이 갑자기 다른 동네에 가서 놀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라 시간은 아직 멀었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랫동네에 어떻게 간담? 그래두 이 아이들도 우리 동네 애들이니까 갔다가 다시 따라서 돌아오면 되겠지.
최초의 모험에 저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움을 느꼈답니다. 아기 때부터 걸음마보다는 말을 더 빨리 배웠다는 저는 무척이나 뚱뚱했다고 하셨죠?
처음엔 나란히 이야기하며 걸어가던 친구들이 어느 외딴 골목에 이르자 마구 뛰는 거 있죠? 저도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구요. 그러나…. 텅빈 골목에 아이들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곳에 저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엄마! 으앙 엄마! 정말 캄캄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미아가 되는구나.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름아닌 나의 일이 되고야 말았구나’ (엄마, 사실 그때는 미아란 말조차 몰랐지만요) 골목에서 한참 울고 있는데 어떤 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오시더군요. 전 따라서 그 집에 들어갔고 그 집 안방에 앉아 과자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답니다. 한참 뒤에 “현정아! 현정아! 현정아!” 하고 부르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줌마, 저 목소리 우리 엄마 목소리예요.” 그때 제가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아줌마는 엄마를 데리고 들어오셨더군요.
“현정아! 엄마랑 집에 가자!”
“싫어, 난 여기서 과자 먹구 살 거야.”
그 이후…. 매를 맞으며 집으로 끌려왔는지 엄마의 타들어간 입술을 보고 어린 마음일지라도 느낀 바가 있어 자발적으로 그 집 문을 나섰는지 거기까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엄마! 새삼스럽게 왜 그런 얘기를 하냐구요? 눈이 온답니다. 지금이 새벽 5시 10분인데요, 밖은 아직 깜깜하지만 제법 큰송이의 눈이 내리고 있답니다. 왜 엄마도 아시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면 옛날의 그 어떤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는 걸요. 그런데 왜 그많은 기억들 중에 엄마가 저를 찾던 그 초조해 하시고 걱정스런 표정을 가득짓던 표정이 생각났을까요.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었답니다.
그런데…. 아!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요! 오늘이 12월의 새벽이라는 사실을. 점점 애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미아될 뻔한 일을 꺼내더니 눈오는 12월의 새벽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다니….’ 엄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엄마 제 말씀 좀 들어보셔요. 앞서 말하던 제 기억 속의 엄마 모습이 작년 12월 저를 지켜보시던 엄마의 모습과 똑같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1991년은 참으로 조여 들어갈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던 한해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고3이 되어 해야 할 과제와 목표는 정해져 저를 추켜 올리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는 행해지지 않았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처음에 그런 나날들 속에서 제게 부여되는 걱정과 괴로움은 모두 다 저의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누가 함께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려고 나서 줄 사람도 없는 철저한 혼자만의 고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외롭게만 느껴지던 그 좁고도 길다란 길을 엄마는 결코 저 혼자만 가게 내 버려 두시지는 않으시더군요.
-현정아,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된 걸 이 엄마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니? 너의 목표가 정해져 있고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만 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니 좀더 힘을 내서 열심히 해보자. 엄마 곧 올게-
어디 나가실 때조차 작은 쪽지를 남겨 놓으시고 가시는 엄마의 모습속에서 전 자꾸 흐트러지려고만 하는 제 모습을 다시금 잡아야만 했었답니다. 하지만 전 엄마가 소위 말하는 과잉보호를 하신 분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공부는 네가 하는 거다. 그 누가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리고 너와 관련된 모든 일도 네 스스로 처리해야 하고….”
다른 엄마들은 자식들 보고 예쁘다거나 잘 생겼다고 잘도 말씀해 주시던데 엄만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다는 거 아세요?
“엄마,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하던데 엄마 내가 안 예뻐?”
“얘는 징그럽게시리…, 니가 뭐가 예쁘노?”
그러나 서운하지는 않아요. 밤길이 캄캄해 독서실에서 돌아올 때 무서울까봐 추운 날도 어김없이 독서실 문앞에서 계시던 엄마의 모습과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직접 도시락 챙겨 가지고 오시던 엄마의 모습.
12월 춥고 까만 밤. 제가 잠자리들기 전까지는 제 옆에서 책을 읽으시며 어둠조차도 함께 해 주시던 것과 이른 새벽 저보다 더 일찍 깨어나셔서 또 그 하루를 누구보다 먼저 맞이하시던 엄마 모습.
엄마! 어릴 적 엄마는 너무나 크게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엌에서 엄마와 나란히 마주할 때면 가끔씩은 아주 이상할 때가 있었답니다. 왜냐구요? 이젠 키가 엄마만큼이나 커진 지금도 왜 전과 같이 저는 작아만 보이고 엄마의 모습은 더 크게만 보이는지 그 이유를 아직 모르거든요.
엄마!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소’ 라는 선전이 있는 거 엄만 아세요? 전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로 태어나고 싶어요. 착하고 말 잘듣고 달리기도 잘 해서 길 잃어버리진 않는 딸, 예쁘게 생겨서 엄마한테 예쁜 딸이라는 말도 듣는 딸로….
그러나 그늘진 좁은 그 길을 함께 걸어주신 엄마의 딸로 태어나기 위해 위의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면 ‘니가 뭐 예쁘노?’ 라는 말씀을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듣더라도 포기하겠어요.
엄마! 눈이 많이는 내리는데 땅에 닿자마자 스러져 버려요. 진짜 함박눈이 내리면 엄만 저하고 제일 경치가 예쁜 곳으로 겨울 나들이 가야 해요! 아시겠죠?
파란 새벽.
오늘은 오직 엄마만을 생각하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1992. 12. 엄마의 딸 현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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