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法),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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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법(法), 나 자신
  • 관리자
  • 승인 2007.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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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경이(驚異)다. 호도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감꽃지는 소리에도 흠칫 무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어린이의 마음이다. 그같은 어린 시절의 경이로운 경험들은 하나하나 쌓여 신비로운 꿈의 성(城)을 그린다.
때로 그것은 마성(魔城)이 되고, 어느 경우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백년 동안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머나먼 그리움의 성이 된다.
나는 산골마을에서 자랐다. 심신 모든 면에서 섬약한 소년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내 어린 시절의 놀라운 경험들은 모두 내화(內化)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들을 소재로 하여 나의 꿈과 성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문학이었다. 나는 언어의 미묘한 울림(韻)에 가만히 귀기울이면서 그 신비스러운 마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문학과 더불어 나를 매혹시켰던 나의 꿈은 성스러움이었다.
감동과 자비에 넘쳐 흐르는 고귀한 정신,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드높은 마음의 광휘…. 나는 인류의 크나큰 스승들에 대한 경모와 찬탄의 마음을 키워 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부처님은 내 마음의 지평선 위에 불현듯 나타났다간 사라져가는 별이었다. 그리하여 내 나이 마흔이 된 지금에 이르러 그분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고귀한 별이요 성(城)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법(法)을 가리켜 보여 주셨다. 그 법은 사상(-ism)이 아니라 법칙이었다. 법칙은 인간의 자의적(恣意的)인 생각(사상)에 의해 오염될 수 없는 것이다. 법칙은 그가 불교도인지 기독교도인지 무종교인인지를 가리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 법 또한 그런 것이었다.
법은 나에게 ‘밖의 길’과 ‘나 자신의 길’을 분별해 보여준다. 그렇다. ‘밖’을 향한 추구의 길에서 쉴 곳은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법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하고, 나 자신을 배워야 한다.
활짝 깬 주의깊은 마음으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상을, 그 변전하는 현상을 통찰하지 않으며 안된다. 그때 부처님에 의해서 발견된 깨달음의 법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른 새벽, 나는 단정하게 앉아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몸의 미세한 세포에게까지 완전한 휴식을 주어 본연적인 질서와 평화를 허락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일깨우고 앉아 나 자신을 관찰하고 배우노라면 그것만으로 내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게 된다. 시간이 허락할 때면 거리를 걸어본다. 그것이 목적없는 산책이요 욕망없는 행위이기를 나는 감히 꿈꾸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그것이 그 얼마나 아늑한 휴식인지를, 왜 나 자신이 나의 의지처인지를 느끼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다. 법을 믿고 따르는 나 자신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최후의 등불이며 의지처이다.
이렇게 하여 나의 오늘, 오늘은 부처님과 법, 법과 나 자신으로 이어지는 오롯한 평화의 길로 이어져 간다.
이 길이 마침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게 될지 나는 묻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흘러간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나는 현재의 고요함을 놓치지 않는 행복한 수행자인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정빈은 ‘53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으며, ’80년 「현대문학」誌에 수필로 데뷔하였다. ‘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나무와 아이」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쳐 민족소설 「丹」 우화 「숭어」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근래에는 붓다의 가르침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전각장 현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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