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에서 더 이상 불을 붙일 수 없게 되는 경우에 용기있는 사람으로서 취할 수 있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로 유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세속의 낡은 문물제도를 깨뜨려 버리고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적응되도록 새로운 그것을 수립하려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세속을 고스란히 놓아둔 채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혁명가가 되는 길이고 후자는 출가 입산하여 삭발위승(削髮爲僧)의 길이다.
이 두 길을 가는 사람의 입장은 정반대 방향이지만 그 출발 동기에는 공통점이 없지 않다. 이 세속에 대한 환멸의 비애를 철저히 느낀다는 바로 그 점이다.
사실 피안의 길을 향하는 이에게 나 혁명의 길을 걷는 이에게나 현실에 대한 무상을 철저히 느끼지 않는 한 그 발걸음이 그리 세차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환멸과 세속에 대한 무상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철저히 느껴보지 못한다면 앞을 향하는 전진의 힘도 약하려니와 또 약하기 때문에 가다가 돌 뿌리에만 채여도 되돌아서는 예가 없지 않다.
따라서 혁명가에게는 그 출신성분이 중요하고 입산 납자(衲子)에게는 출가동기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이단(異端)의 성공여부는 곧 그 출발동기 여하에 달려있다고 해도 그리 억측의 논리는 아닐 것이다.
그 좋은 예로서 우리는 근세의 도인 효봉(曉峰) 큰스님의 경우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효봉스님은 별호(別號)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판사 스님, 엿장수 중, 절구통 수좌, 무(無)자 노장등.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