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시심
한참 만에 효봉어록(曉峰語錄)을 다시 읽으니 새 어록을 대하는 느낌이다. 원래 선사(禪師)의 법문과 게송이 그렇듯이 이 어록도 여기저기 보일 듯 말 듯, 집힐 듯 말 듯 마냥 흘러가도 있다.
하지만 구구절절이 깨달음을 재촉하는 준엄한 말채찍임에 틀림없다.
“사람마다 그 발밑에 하늘 뚫을 한가닥 활로(活路)가 있는데, 여기 모인 대중은 과연 그 길을 밝고 있는가? 아직 밟지 못했다면 눈이 있으면서도 장님과 같아 가는 곳마다 걸릴 것이다.
보고 들음에 걸리고 소리와 빛깔에 걸리며 일과 이치에 걸리고 현묘(玄妙)한 뜻에도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한번 그 길을 밟으며 이른바 칠통팔달(七通八達)이요 백천 가지를 모두 깨달아 밝히지 못할 것이 없고 통하지 못할 이치가 없을 것이다.” 〔1948. 7.15. 해인사 가야총림에서 법어의 한 구절〕
걸림없는 무애한인(無碍閑人)이 되기 위해서는 망상과 집착을 여의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망상과 집착은 우리가 다 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부처를 구하더라고 그것은 곧 부처에 걸리게 되는 것이고 조사를 구해도 조사 때문에 여기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하는 데서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에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다.
凡所有念者 는
범소유념자
難爲無事人 이로다.
난위무사인
直下頓忘去 하면
직하돈망거
臘月無八日 이니라.
납월무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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