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수틀에 우주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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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틀에 우주를 담는다
  • 관리자
  • 승인 2007.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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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수예가 이학(李鶴)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생생한 아름다움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일까.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사회구조와 체제속에서 자신은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생명은 원래가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것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찌 되었든 한정된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한정된 삶 속에서나마 잘 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의 바램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잘 산다는 것, 그리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가끔식 생을 웬만큼 살아온 분들의 얘기 속에서 그 기준을 가늠해 볼 때가 있다. 그분들은 설령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름대로 생에 대한 가치 기준을 갖고 있다. 게다가 어느 한 분야에 있어 전문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아, 그것이로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예가(繡藝家) 이학(李鶴, 70세) 씨. 우리나라 자수에 있어 일가견을 갖고 또 그 솜씨에 대한 그의 명성도 명성이려니와 국무총리를 지냈던 ‘진의종 씨의 내조 잘하는 부인 이학 씨’라는 그의 이름은 익히 들어오던 바이다.

원래가 지주의 딸로 태어나 한평생을 커다란 굴곡없이 유복하게 살아온 이학 씨는 그 인생여정이 순탄했던 것만큼, 그리고 그의 이름이 그를 말해주듯 70이라는 나이에도 학처럼 고운 자태을 지니고 있었다.

그분은 누가 보아도 ‘저분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한평생을 복되게 살아온 분이다. 그런데 그분 자신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제가 자수를 하게 된 것은 제 생활의 범위가 허용된 안방생활에서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남편을 내조하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제가 몇 십 년만 뒤에 태어났어도 성악가가 되었거나 무용가가 되었을 거예요.”

예향(藝鄕)인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난 이학 씨의 사랑채에는 묵객과 방랑시인들이 거의 매일 묵어가다시피 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문화재급은 족히 되고도 남을 명창들의 노랫가락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춤사위가 자주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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