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가 용이 되어도 그 비늘은 바꾸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선가(禪家)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 “범부가 성인이 되어도 그 모습은 변화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분별심은 어떤가? 이와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없을까?
“분별심을 갖지 말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분별심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걸까? 분별심을 차별심이라고도 한다. 특히 열반하신 성철 스님께서는 수좌들에게 “차별심을 버려라!”라고 하시며 수좌들을 지도하셨다. 차별심을 ‘섭경심(涉境心)’이라고도 한다.
이 분별심은 우리들 감각기관 앞에 펼쳐진 대상에 대하여 시비·선악·대소·미추·호오 등의 가지가지 차별된 견해를 일으키고는, 원하는 것은 취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는 등의 저울질하는 마음이다. 결국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수행을 장애하는 망상집착의 뿌리가 된다. 또 이러한 차별심·분별심·섭경심은 모두 ‘헤아리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곧 가설된 자기를 근거로 해서 일으키는 망심분별 때문에 사물의 이치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니, 당연히 내려놓아야 할 대상 가운데 하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렇다면, 분별심이 선종의 종사들에게는 어떻게 비쳤을까? 여기서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견산견수(見山見水)’라는 3단계 법문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이 법문에서 망념의 분별심을 깨달음의 본질로서의 분별지로 발전해가는 단계를 말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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