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요, 수행과 일이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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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요, 수행과 일이 둘이 아니다
  • 관리자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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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님 | 가야산 해인사 현응 스님

깨달음의 산 가야산 해인사. 성철 스님, 혜암 스님, 법전 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객과 수많은 강백들을 배출해낸 곳이 이곳 해인사다. 빳빳하게 풀 먹여 다린 먹물옷의 품새 같다고 할까. 선풍과 법풍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법보종찰 해인사에는 요즈음 같은 안거철이면 500여 대중이 함께 수행정진을 한다. 해제철에도 300여 대중이 승가공동체를 이루는 곳이 바로 이곳 해인사다. 그래서일까. 가야산 해인사를 그려보면 가슴엔 충만한 법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방장스님을 위시한 산중회의에서 현응 스님에게 중책인 주지소임이 맡겨진 것은 2004년 10월. 세수 마흔아홉에 법랍 33년. 법랍은 비록 적지 않지만, 해인사가 본사인데다 법보종찰이면서 총림인 것을 감안하면 세수는 젊은 편이었다. 세대교체는 급변하는 사회에 대처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요청인지도 모른다.

시대적 흐름속 불교의 역할

현응 스님의 탁월한 기획력은 교계 안팎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1994년 조계종개혁회의 때도 기획조정실장에 발탁되어 현 종헌종법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시대와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수행과 포교의 방법을 새롭게 모색, 해인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가라는 것이 현응 스님에게 내려진 어른스님들의 특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지라곤 처음 맡아보는 일이지만 그것도 체질인 모양이다. 큰살림하시느라고 힘들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재미있게 하다 보니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스님은 무슨 일을 하든 하나가 되어서 한다. 수행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요, 수행과 일이 둘이 아니다. 출가수행자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었던 70, 80년대 질곡의 역사 현실 앞에서 치열한 고민이 없지 않아서일까. 수행도 깨달음도 포교도 세상이나 역사와 유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생각이다. 그래서인가. 현응 스님에겐 불교수행도 혼자만의 수행이나 공부가 아니었다.

부처님은 뭇 삶의 불행과 고통을 자신의 일과 같이 생각했다. 현응 스님의 화두 또한 늘 삶의 문제였다. 그리고 삶의 다른 모습이기도 한 사회나 역사,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말씀도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기본적인 해명과 가르침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현재 난무하고 있는 세계관과 이념과 이론적, 실천적 모습들을 연기적 세계관, 즉 변화와 관계성에 기존한 역동적인 불교의 역사관으로 밝게 비추어 그것들을 수정시키고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삶과 현실에서 역사적 전망과 목표를 설정하여 진지한 참여와 실천을 하되 그 노력의 과정이나 목표에 교조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연기적 역사관을 체득하는 것이야말로 대승불교 정신의 요체인 것이며 실천적 과제일 것입니다.”

시대적인 흐름과 그 속에서 불교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해인사는 또 어떻게 그 흐름을 잡아갈 것인가. 출가 후 평생을 살아온 해인총림에 대한 역할과 위상에 대한 오랜 동안의 고민을 ‘주지’라는 소임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해가고 있는 셈이다. 현응 스님은 주지를 맡으면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안정된 수행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역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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