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엄마의 모습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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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엄마의 모습은 아니지만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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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집 이야기

수원시 정자동에 사회복지 법인연꽃마을 ‘행복한 집’을 위탁 운영하게 된 것이 1998년이다.

처음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미취학 아동 7명이 한 가족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 각자 상처와 사연을 안고 서로 모였기에 처음에는 불협화음도 감래해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온 아이, 아버지의 음독자살을 목격한 아이, 이혼으로 술주정에 결국은 불량한 사람들로부터 몰매를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를 둔 아이, 계모로부터 학대받던 아이,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신 아이…. 생각해보면 사연과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 모였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적대감이 나름대로 많았던 것 같다.

자매가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가 걸핏하면 울고 말 소리도 제대로 안 들릴 정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여러 번 말을 크게 하라고 했지만 언니 오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미워하였다. 처음에는 나에게도 경계를 많이 하였다.

어느 날 유치원에 갔던 아이가 얼굴이 손톱자국으로 엉망이 되어서 돌아왔다. 유치원에서 싸웠나 알아봤더니 집에 있는 오빠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오빠가 아침에 머리를 쥐어 박아서 유치원에 가다가 본인이 상처를 냈다는 것이다. 사태가 심각한 것을 인식하고 더욱 더 관심을 갖고 인위적으로라도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걸 알게 해야겠다 싶어 정말 육개 월이 넘게 안아 주고 업어주면서 무릎에서 거의 내려 놓지를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잘 대해 줄 것을 설득했다. 기억으로는 1박 2일 수련회에 갔다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저예요, 이제 목소리 크게 할께요.” 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 다음 날부터 집이 떠나간다. 울지도 않고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그런지 지금은 너무나 밝게 잘 생활하고 있고 벌써 졸업반이 된다. 그 때 매일 전화와 편지로 일심동체가 되어 아이에게 관심을 베풀어 주신 유치원 선생님 또한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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