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특별나고 남들이 알아주는 삶을 살고 싶어 했던 허황됨이 내게서 사라지던 날 나는 멈출 수 없는 눈물로 밤을 새웠다. 그렇다. 그 날 나는 한없는 부끄러움과 정작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나를 조금이나마 희미하게 발견한 것이다.
그 참회의 눈물은 나를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참회의 눈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주부 모델로 가끔씩 CF촬영으로 소일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1992년 주부생활 1년 만에 내가 겪었던 남편의 교통사고와 죽음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누구에게도 그 아픔을 보이고 싶지 않은 오만함으로 잘 살고 있다는 듯 마음속의 곪고 터진 누런 고름들을 혼자 부둥켜 안고 가식의 웃음들을 뿌렸다. 때로는 절을 찾았고 그 곳에서 나만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 이전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다녔던 불교학생회에서도 예불과 법회에만 가끔 참여했을 뿐 깊이 있는 불교 공부는 할 생각조차 없었다. 다만 순전히 내가 힘들 때 나만을 위한 일방적인 어리석은 기도일 뿐이었다. 바른 마음가짐도 실천도 없는, 그저 내가 불편하기에 편하게 해달라는 어이없는 그런 기도였다.
그러나 나이 33살을 넘기고 34살이 되던 해 나는 108염주를 들고 먼 타국 땅에서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마룻 바닥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나의 행복과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닌, 나의 좁고 어리석었던 모든 죄들을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동시에 더 간절했던 것은 집착과 어리석음으로부터 빨리 벗어나 진정한 불교 신자로서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보다 더 남을 사랑하고, 가진 것이 없는 나를 원망하는 것보다 한없는 맑은 마음을 가지고 늘 그 마음의 덕을 보시하는 아름다움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느 때 내가 느낀 일상과는 다른 처절한 인고이며 알게 모르게 나로부터 생겨난 죄에 대한 깊은 참회의 눈물이었다. 그 뜨거웠던 눈물을 계기로 나는 이기적이고 좁은 나의 안목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어느새 천수경과 반야심경의 의미를 공부하며 허울좋은 이론이 아닌 일상에서의 실천 불교를 몸에 익히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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