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 머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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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 머리 할머니
  • 관리자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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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노인들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혼자라는 외로움일 것이다. 더욱이 추운 겨울철이면 몸이 움츠러들어 바깥 활동에 제약을 받아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만약 50년이 넘게 혼자서 살고 있다면 그 외로움과 슬픔의 크기는 어떠할까? 이점준(75세) 할머니를 만났을 때 그 넉넉한 웃음과 자상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수많은 아픔과 눈물 뒤에 오는 초연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인 전주에서 열일곱의 나이에 시집을 가서 남편과 오손도손 살아보려 했지만 생활이 여의치 않았다. 자신 소유의 땅도 없거니와 마땅히 먹고 살 길이 없었다. 둘째를 낳고는 남편이 결심을 한 듯 서울에 가서 돈벌이를 해오겠노라며 홀연히 집을 나섰다.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남편이 서울로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6·25전쟁이 터졌다. 남편 소식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했으나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젖먹이를 업은 채 6살 난 큰아들 손을 잡고 떠난 피난길은 상상을 초월한 고행이었다. 산 속으로 숨어들어 거적때기 하나에 의지해 눈을 붙였고, 아이들은 배고픔에 울다 지쳐 잠이 들기가 일쑤였다. 그야말로 나무 뿌리를 캐 죽을 끓여먹던 시절이었다.

겨울이 찾아오자 아이들이 동시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는 산 속에서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해 있던 아이들은 그 겨울, 그렇게 추위에 떨며 차례로 할머니 곁을 떠났다. 그 때 할머니 나이 23세였다.

“하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애들을 살려놓고 이 하찮은 몸을 거두어 갈 것이지…. 미치광이처럼 울부짖기도 하고, 애들을 따라가려고도 했지만 목숨이 끈질기게 붙어있대요. 에미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죽어서 아이들을 볼 낯이 없어 이렇게 살아있는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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