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오천축국전] 10.세계 최고의 상아탑, 나란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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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왕오천축국전] 10.세계 최고의 상아탑, 나란다 대학
  • 김규현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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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왕오 천축국전 별곡 10

인도 불교의 요람 

붓다와 그의 제자들의 체취가 진하게 스며 있는 왕사성을 뒤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걸음을 재촉하고 있노라니 문득 어떤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영취산(靈鷲山)의 능선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러나 계속, 마치 환청 같은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그건 바로 붓다가 영취산에서 설한 『법화경』의 첫 구절이었다. 아니 낭랑했다던 아난다 존자의 목소리 같았다. 문득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가서 영취산 너레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선정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 몸은 어딘가에는 있을, 진리에의 길을 찾아 앞으로 가야 하는 ‘해동의 나그네’인 것을….

왕사성에서 나란다는 지척지간이었다. ‘나란다’라는 어원은 이곳 호수에 살던 용의 이름이었다지만, 그보다도 이 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인도 최고의 학문의 요람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나란다 마을은 붓다의 재세시에도 이미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곳은 망고나무 숲이었는데 5백 명의 상인이 땅을 사서 붓다에게 수행처로서 보시하였기에 붓다는 이 곳에서 한 철을 머무시며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고 한다.

그 다음 이 곳 출신인 사리불과 목건련에 의해 인연의 뿌리가 내리고 후에 승단이 확립되면서 종합수도장으로 점차로 커져 갔다. 나란다의 전성기는 5∼12세기의, 약 7백년간이었다. 당시의 나란다는 세계적인 학문의 요람이었는데, 불교학 이외에도 인문학·철학·수사학·자연과학·천문학 그리고 다방면의 예술까지 폭넓게 탐구되었던 명실공히 인도 최대의 종합대학이었다. 한참 때의 나란다는 8천 5백 명의 학승과 1천 5백 명의 교수와 주민들이 함께 거주할 정도의 거대한 캠퍼스타운이었다고 기록들은 전하고 있다.

당의 유학승 현장(玄 )도 이 나란다에 5년간 머물렀다. 그는 스승이었던 계현(戒賢) 논사를 비롯하여 당대를 풍미하던, 유식학(唯識學)의 쟁쟁한 ‘10대논사(大論師)’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 뒤 웅장하고 화려하였던 당시 가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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