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세 할아버지의 삶
상태바
106세 할아버지의 삶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비의 손길

겨울 의 막바지에 접어들며 서울에 내린 32년 만의 폭설도 봄기운 앞에선 무력했다. 연로한 노인 분들도 추운 겨울엔 잘 견디시다가 봄이 오면 나른한 기운에 몸을 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번 호에는 3세기에 걸쳐 살면서도 아직 정정하신 할아버지 한 분을 찾아뵈었다.

결식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무료 급식을 하고 있는, 서울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관음의 집’에서 김봉학(106세) 할아버지를 만나 댁으로 갔다. 취재 손님을 맞는다고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할아버지는 1896년 생으로 현재 강동구에서 최장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00세를 훌쩍 넘어 살아온 만큼 인생 역정(歷程) 또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연이 많다.

충남 공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며 자랐다. 청년이 되어 면사무소에 취직했다가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백화점 식당에서 직원들 식사를 책임지며 10원 50전이라는 괜찮은 보수를 받았다. 쌀 한 가마에 6원 하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는 고향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팔씨름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젊어서부터 힘이 장사였다. 워낙 힘이 좋고 충청도 특유의 후덕한 성품을 타고나서 여기저기 일자리가 끊이질 않았다. 호텔 매점의 관리를 맡고서부터는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결혼도 하고 아들딸 3남매를 낳아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았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큰아들이 8살 나던 해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6·25전쟁이 터지던 해 고등학교에 다니던 작은아들마저 실종되어 지금까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그나마 딸은 곱게 잘 커서 시집을 보냈다. 현재 여든의 나이로 공주에 살고 있지만, 노환으로 할아버지를 모실 처지는 못 된다고 한다.

1979년도에 평생을 일해 모은 돈으로 55평짜리 집 한 채 마련하여 할머니와 노후를 보내려 했으나, 그 일마저 틀어져 버렸다. 알고 지내던 여자가 중간에서 돈을 빼돌려 달아나 버린 것이다. 그 일로 상심해 있던 할머니는 그 해 동짓달에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 후로 성당 일도 도와주고, 공동묘지 지키는 일, 파지 수거 등을 하며 근근이 살아오시다가 얼마 전부터 조카딸의 둘째 아들과 살고 있다. 손자가 손주며느리와 성격 차이로 이혼하면서 6살 된 증손자와 함께 세 명이 살게 된 것이다. 손자가 택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야간 일이 많아 가정을 돌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식사 준비와 빨래를 하며 유치원에 다니는 증손자를 돌보고 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