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로서 ‘불교여성학’을 연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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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로서 ‘불교여성학’을 연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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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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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만행

비구니 로서 불교여성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끝없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나는 불교적이면서 그다지 가부장적이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사회경험 없이 19살의 나이로 출가했다. 1978년 운문사를 졸업할 때까지 한국승가의 비구중심성에 대해 어떠한 저항감도 느끼지 않았다. 사미니와 비구니만의 세계인 강원에서는 미처 그것을 알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구의 비구니에 대한 우월적인 태도나 비구니의 자기를 비하하는 발언을 접할 때마다 그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년배나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비구니의 절을 앉아서 받는 비구스님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민망했다. “내생에는 남자로 태어나 비구가 되어서 성불하겠다.”고 말하는 비구니스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똑같이 수행자가 경계해야 할 항목일 것이다.

1981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진학한 후 여성학 강의를 듣고서야 비로소 인간사회는 역사 이래로 남성중심 사회였고, 여성은 남성의 부속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불교교단 내부에도 뿌리 깊은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눈뜨게 되었다. 교단은 비구중심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고, 비구니는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1988년 도쿄에 있는 고마자와(駒澤) 대학으로 유학하게 되었을 때 나는 불교여성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불교의 성차별의 근거를 밝히고 그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보다 불교학 연구가 훨씬 앞섰다고 일컬어지던 일본의 불교학계에 아직 불교여성학이라는 용어조차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교여성학을 연구하는 학자를 지도교수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성학 연구의 역사는 짧았고, 불교여성학 연구는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본에 있는 동안 내가 집요하게 붙잡고 있던 연구 테마는 율장에 포함되어 있는 ‘팔경법(八敬法)’주) 에 관한 것이었다. 불교교단에 있어서의 성차별의 근원은 팔경법에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박사논문에서는 비구·비구니의 계율을 비교 분석하여 그 차별성을 비판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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