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공모 입상작] ‘마니산(摩尼山)’ 이름 개명음모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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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공모 입상작] ‘마니산(摩尼山)’ 이름 개명음모 저지
  • 박덕성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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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행수기 공모 입상작 ▣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마니산(摩尼山)’ 이름 개명음모를 저지하다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 ‘마니산’ 이름의 개명음모가 시작된 것은 94년 말부터였다. 서울 기독교 YMCA 명예총무 J와, 그의 추종 세력인 당시 부천 출신 경기도 의회 의원 H, 그리고 강화문화원의 L 등이 야합하여, 기독교의 이름인 ‘마리’와 같은 ‘마리산(摩利山)’으로 고치기 위해, 간교하고 교활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마니산 이름을 일제가 개명하였다고 허위 왜곡 날조하면서, 주간지 ‘강화뉴스’에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강화의 주간뉴스 사장 S란 사람도 마니산 이름 개명음모의 공동 주관자였으니, 왜곡선전은 가히 극에 달하였다.

서울 기독교 YMCA 명예총무 J는 이미 80년대부터 ‘크리스찬 라이프’라는 기독교계 신문을 통해서 강화의 마니산 일대를 그들의 신앙 대상지라 착각하고 마니산 이름 개명음모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국조(國祖) ‘단군’께서 하늘의 최고신 ‘석제환인(단군의 할아버지)’에게 제사 지냈다는 점과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일맥상통한다는 억지 논리로 정당화하려 하였던 것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마리산으로 고치면 기독교의 성모 이름 ‘마리아’와 같이 된다는 논리를 철저하게 염두에 두고 개명음모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사실상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대다수의 강화 군민들은 마니산(摩尼山) 이름이 맞는지, 또는 마리산(摩利山) 이름이 맞는지조차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개명음모 추진자인 J와 강화문화원 L, 그외 몇 명의 향토 사학자만이 알고 있었다. 마니산(摩尼山)을 한문 뜻 그대로 하면 ‘여승이 연마하는 산’, ‘연마하여 화하는 산’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니 불교 이름으로 해석되는 ‘마니산’ 이름이 저들에겐 몹시 못마땅하고 불쾌한 이름으로 생각되어 개명음모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상고 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마니’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오고 있었다. 북한 지방에서의 사투리로 ‘오마니(어머니)’와 ‘할마니(할머니)’ 등 위대한 모성을 높여 부르던 이름이었고, 현재도 강원도에서는 산삼을 캐는 사람을 ‘심마니’(여기서의 ‘마니’는 사람을 뜻한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조의 성종에서 중종에 걸쳐 발간된 사회 인문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부터는 단독으로 마니산 이름만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니, 500여 년 전부터 조선조의 문헌과 고지도에 모두 마니산으로 표기되어 현재까지 내려온 이름이다.

사실 나 자신도 93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마니산 정수사에 다니기 전까지는 전혀 뜻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94년엔가 불광사에서 오신 어느 큰스님에게서 처음으로 마니산 이름의 뜻을 법회시에 듣고 알게 되었다.

마니(摩尼)는 마니주(摩尼珠)·마니보주(摩尼寶珠)를 뜻하며,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를 말한다. 즉 마니는 어떠한 탁한 물이라도 맑게 정화하고 모든 나쁜 악을 제거하며 어떠한 염화(炎禍: 무서운 재앙과 근심, 환난)라도 없애주는 무한한 신통력을 지닌 보배로운 구슬이라고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마니산 정수사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은 관세음보살님이 이렇게 될 것을 아시고, 나에게 마니산 이름 개명음모를 막으라는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95년 3월 1일은 강화가 인천시에 통합된 날이다. 그리고 그 해 95년은 정부가 일제 잔재 청산의 해로 선정한 해였다. 마니산 이름 개명음모론자들은 95년을 가장 효율적인 해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으니, 새로운 인천시 지명위원들은 강화 마니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와 또 마니산 이름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민족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개명한 이름이라고 추진 동기를 허위, 왜곡 선전하며 일제 잔재 청산 대상의 이름으로 낙인찍어, 동반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정말 강화 군민들을 완전히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은 95년 4월 3일자로 ‘마리산 이름 되찾기’라는 제안서를 강화군 지명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추진위원장엔 J와 강화문화원장, 주간 강화뉴스사 공동명의로 하였고 당시 강화문화원장 N과 강화문화원 L(개명음모 장본인)이 강화군 지명위원회 위원으로 있었으니 그들의 책동에 동조하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 등과 합세해 무엇 하나 걸릴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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