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불교 새물결 운동의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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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불교 새물결 운동의 기수
  • 관리자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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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큰스님의 생애와 사상

어린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직전 귀국하여 아버님을 여읜 나는 홀어머님과 같이 살다가 청운(靑雲)의 길을 위해 정처없이 걷다가 결국은 봉은사 대학생수도원에서 인생의 큰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한 분은 고광덕(高光德) 스님이시고, 그 분을 통한 부처님이시었다.

세상물정에 어두웠고 미래가 불확실한, 그러나 꿈만은 잃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흔들거리는 우리에게 스님은 가슴앓이의 지치신 몸에도 불구하시고 부처님에 대한 계(戒)행과 정(定)행인 선정(禪定)의 방법과 혜(慧)행인 반야(般若)의 정신을 일깨워주셨다.

부처님의 사상은 시대별로 살펴보면 첫째는 근본불교시대인데, 이 시대는 부처님과 사부대중의 불교였다. 단순한 수행이나 공부는 기본이었고, 고통받고 압박과 차별받은 민중과 중생에 대한 자각과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무량(無量) 해탈(解脫)의 시기이었다. 두 번째는 원시불교시대로 부처님과 부처님 직제자시대인데 이 때는 불교의 전법(傳法)시대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부파불교시대는 부처님 법설과 사상에 대한 오해와 현학적인 이론 탐구와 수행 위주, 승단 위주의 사부대중이 아닌 교단 위주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네 번째의 시기에는 사부대중의 불교인 원시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대승(大乘)불교가 일어나게 되었고 부파불교의 소극적인 면을 질타하여 소승불교라고 혹평하게 된다.

이러한 부처님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곧 사부대중의 불교라면 그 동안 한국불교나 중국불교가 과연 대승불교였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고려의 융성했던 불교는 귀족불교라 할 수 있고 조선조에는 정치사회적 변화와 불교 교단 자체의 소승화에 따라 사부대중의 불교가 아닌 민중과 거리가 먼(조선의 억불숭유의 정책 때문이지만) 산중, 수행, 기도, 기복, 소극적 불교였고 일제를 거치면서는 교맥(敎脈)도 선맥(禪脈)도 미미한 절멸의 상태였다.

임진왜란 시기의 서산(西山), 사명의 선맥은 경허 선사로 인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해방 이후 불교계는 리승만의 또다른 종교정치적인 음모로 인하여 비구·대처라는 법정투쟁의 소모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처럼 해방 이후의 불교는 기복적인 불교, 산중불교, 사회를 위하고 남을 깨우치는 불교가 아닌 소극적인 불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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