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고 반성하는 마음
상태바
참회하고 반성하는 마음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풍경소리

나는 지난 번 조계종 사태를 보고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이 땅의 불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주먹과 몽둥이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풀고 타협을 모색하는 길은 없었는가? 이런 형태가 이 땅의 토양에서 수천 년 뿌리를 내려온 민족종교의 모습인가? 더욱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외치고 모든 절차에서 민주방식을 지향하는 현 단계에서 이런 파행의 모습은 우리의 의식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해방 후 서구 종교가 정치적 환경이나 국제역학(國際力學)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물밀듯이 들어왔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린 사람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고 유학을 주선해 주는 따위 특혜는 사람들을 꼬이게 할 만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불교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불교에는 해방 후 친일의 잔재가 곳곳에 짙게 깔려 있었다. 일제는 불교를 친일화하는 정책을 아주 교묘하게 수행하였다. 특히 승려들의 대처(帶妻)를 권장하여 불교를 세속화시켰다. 대처승은 근본적으로 사판승(事判僧)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는 기독교의 목사나 일본의 포교 승려들처럼 대처승의 존재를 인정할 만한 현실적 필요성이 있으나 당시에는 어용으로 만드는 하나의 도구였다.

이들 대처승들이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빌붙어 불교 재산을 관리하였다. 그래서 바른 마음으로 수도하고 정진하는 스님들은 산 속에서 끼니를 변변히 떼우지 못하고 떨며 살았고 운수행각(雲水行脚)으로 떠돌며 살았다. 식민지 시기의 불교는 사상과 이론이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었고 따라서 고승도 배출될 수 없는 토양이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