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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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감추기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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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에서 건지는 깨달음21

인기 스타였던 손창호가 40대 중반의 나이로 죽었다.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에 종횡무진 출현하며 인기를 끌었던 중견 배우가 이승을 떠난 것이다.

한 텔레비전 방송사가 죽기 전에 손창호의 마음을 살폈다. 손창호는 영화 제작에 손댔다가 실패한 후 병까지 얻었다. 당뇨병, 중풍기, 신부전증 등이었다. 의지할 가족이나 돈도 없는 그는 행려병자로 적십자 병원에 입원해서 두 해가 넘게 살았다.

그의 신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인공으로 피를 걸러야 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술, 고기, 담배 등을 끊고 음식의 양을 줄여야 했다. 그러나 손창호는 투병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끊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고, 아무 음식이나 먹어댔다. 마침내는 의사의 허락도 없이 외출했기 때문에 병원으로부터 쫓겨났고 얼마지 않아 금생을 마무리했다.

왜 손창호는 갱생의 의욕을 보이지 않았을까. 물론 병이 너무 깊이 들었다는 절망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저와 같은 병을 얻고, 그것이 급격히 악화된 원인 가운데는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자기의 목숨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척하지 않았을까.

자존심이 강한 기생은 늙어서 거울을 깬다고 하던가. 늙으면 탄력 있고 윤기 나던 피부가 시들어 버린다. 늙은 기생은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거울을 깨버리고 남자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생이 아니더라도 미모를 잃으면 숨어 버리겠다는 이도 있다. 내 주변에는 60이 넘었는데도 30대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불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과 미모를 중시한 나머지, 지금의 것이 무너지면 다시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고양이나 벌을 키워 본 사람은 손창호나 자존심 강한 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아무 데나 용변을 보지 않는다. 방에 키울 경우에도 큰 그릇에 모래를 담아 놓으면 그곳에 일을 보고 모래로 덮어 놓는다. 미국으로 이민 가는 한 불자가 새끼 낳은 고양이 가족을 절에 가져 온 적이 있다. 작은 방에 고양이들을 내려놓자마자 어미 고양이가 갑자기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도망친 것으로 알고 걱정했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는 잠시 후에 방으로 돌아왔다. 용변 때문에 나간 것이었다. 또 고양이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숨어 버린다. 아픈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더 이상 꿀을 따오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되면 벌통을 떠난다. 동료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린다. 혼자 숨어서 죽는 것이다.

사람의 큰 걱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늙거나 병들었을 때, 남에게 폐를 끼치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아파 누운 기간이 짧으면 좋지만 길어지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짐이 된다. 남의 짐이 되면서 사는 것은 정말 괴롭다. 늙음과 죽음을 예상하는 모든 사람의 소원은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조용히 몸을 감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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