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줘야 하나
상태바
누구에게 줘야 하나
  • 관리자
  • 승인 2007.09.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번뇌에서 건지는 깨달음 20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불자 어머니 한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은 아들을 일류 의대에 입학시켜서 의사로 만들었고, 그도 부족해서 미국에 유학까지 보냈다. 아들은 현지인과 결혼했고, 미국 동부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일년에 한두 번 서부 샌디에이고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을 뿐 한국과는 온전히 멀어졌다. 며느리는 한국말을 모르고 자식은 없다. 한국식으로 말해서 외국인 며느리를 맞아서 대가 끊어진 것이다.

나는 그 불자에게 물어 보았다. 한국의 지방도시에서 그토록 공을 들여 키운 아들 하나를 영원히 타국에 내어 주었는데 좀 허망한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 불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던 유기천 전 서울대 총장이 심장수술 후유증으로 이승을 하직했다. 평소에 자신의 모든 책과 재산을 서울대 법대에 들여놓고 싶다는 말을 해 왔기 때문에 별도의 유언이 없었지만 유족들이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소장 도서도 많고 재산의 총액이 30억이나 된다고 하니, 고인과 유족들이 대단히 큰마음을 낸 것이다.

나는 신문의 큰 제목만을 보고 ‘그래 저 정도는 되어야지. 자신이 책임자로 있던 학교에 모든 것을 다 넘겨주고 죽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맡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과 내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진리, 정의, 사랑, 나눔, 애국애족, 구제 등 좋은 말을 빼놓지 않고 목청 높여 외치는 이들이, 자신이 죽을 때 세상에 무엇을 남겨 놓던가. 남을 말하기 전에 나는 죽을 때 무엇을 부처님과 중생에게 바칠 것인가. 아무런 준비가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큰 제목 아래 있는 기사를 읽어 가면서 저 고인에게 후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외국인 부인이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나 딸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어떻게 전 재산이 기증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려줄 직계 후손이 없다는 점이 전 재산을 인연있는 학교에 바칠 결심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자손이 없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회에 바치고 죽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자손이 없으면 그런 마음을 내기가 쉬운 것만은 분명하다.

짐승도 새끼는 위해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