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일지(落鄕日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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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일지(落鄕日誌)
  • 관리자
  • 승인 2007.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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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이 인간이 어딜 갓나. 도대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아나, 어휴." 점심밥을 차려 먹고 노곤 노곤하여 거실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자니 미숙 씨는 문득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더니 옛말 하나 그른 것 없다고, 그 말이 꼭 자기 신세를 두고 생겨난 말처럼만 여겨지는 그런 심사였다.

하기야 서울 생활로만 삼십오 년 넘게 익은 몸뚱아리가 난데없이 충청도 산골에 둥지를 튼 까투리 신세가 됐으니 모르긴 몰라도 지나가는 까마귀를 붙잡고 말수작을 해봐도 틀림없이, 에고, 어쩌다가 더럽게 풀렸구랴, 하는 쯧쯧 타령이 건너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 터였다.

"어쩌다 이런 산골 귀신이 되었는지, 칫." 미숙 씨는 건성건성 읽던 책을 한쪽으로 치우고 쓴 입맛을 다셨다. 괜히 속이 뒤틀리는 게 먹은 것조차 안에서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미숙 씨가 남편 김농부(낙향 후 아는 사람들이 우스개로 종종 그렇게 부른다)의 결단을 무조건 아니올시다, 하는 건 아니었다.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숙고하여 결정한 일인 줄 모르는 바 아닌 것이다. 그래도 자꾸 제 신세를 번철에 놓인 부침개모양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목뒤가 뻣뻣해져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잘 나가는 중소 규모의 무역회사에서 명년이면 영순위로 부장 진급이 약속된 모범 간부였다.

그런 그가 다 걷어치우고 충청도하고도 이 심심 산골짜기에 틀어박혀 농부로 한 평생 삶을 일구겠노라고 한 데는 나름대로 그만한 속내가 있었다. 물론 속속 들이야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근 십여 년 간 곁에서 보아온 미숙 씨로선 남편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얼기설기 덜렁패는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어쩐 일인지, 날 적부터 그쪽 가락인지, 아니면 태생이 굽은 나무라 저 홀로 선산이라도 지키고 싶은지 늘 시골 생활을 동경해 왔다. 물론 남편은 전라도 저 구석지 태생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중학 이후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도시에서 혹은 서울에서 수돗물을 먹은 빠금한 도시인에 다름 아닌 그야말로 하이칼라임이 분명했다.

그런 그가 시골 생활에 더욱 향수를 갖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환경문제에 열을 올리면서부터이리라 싶다. 남편은 연전부터 몇몇 곳의 환경단체에 적을 올리고 열심히 이론 공부를 하는가 싶더니 더러는 품삭 없는 놉 노릇도 마다 않고 이리저리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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