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바람이 빚은 한국인, 돌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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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바람이 빚은 한국인, 돌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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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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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밝히는 등불 / 한국석불문화연구회 이근후 회장

15년 넘게 전국의 석불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또 몇 차례 그 사진들을 전시하기도 했던 이근후 박사(한국석불문화연구회 회장, 이대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64세).

그만한 공을 들였다면 그의 집, 그의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석불사진이 걸려 있을까. 혹시 그의 석불에 대한 열정은 벽전체를 석불사진으로 꾸며놓게 하지 않았을까. 전시장을 보는 듯하지는 않을까.

"거의 없어요. 지난 번 경주 남산 석불 사진 전시했던 것 100여 점인가도 다 줘버렸어요. 경주에서 가까운 현대쪽에 외국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우리 석불도 알릴 겸 그 사람들 주라고 했지요. 참 좋아한다고 해요. 외국사람들이."

목소리의 높낮이에 별다른 변화 없이 너무도 쉽게 답하는 그의 이야기에 그만 욕심 가득했던 속인의 질문이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그래도 호기심이 발동해 그 동안 몇 번 정도나 석불을 친견했느냐, 또 얼마나 자주 경주 남산을 가보았느냐는 질문이지만 "몇 번이나 가보았는지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예의 그 허허 웃음뿐이다.

횟수와 수치의 크기로나마 그의 석불에 대한 열정을 짐작해보려 했던 생각이 그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런데 그렇게 무너지고도 그를 대하는 마음이 너무도 상쾌하다.

"지금 와서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가 산을 굉장히 좋아했고 정신과 의사를 했기 때문에 석불을 찍게 된 것 같습니다.

젊었을 적에 산을 좋아했으니까 그 때 내 생각에 나이 들면 산꼭대기까지 못 올라가니까 산 중턱이라도 돌아다녀야 되지 않을까 했던 거지요. 그리고 개인 심리를 전공한 정신과 의사로서 우리 나라 사람의 국민성이랄까, 민족성이 연구대상이었는데 지금 사람이라면 제가 이렇게 만나서 면담도 할 수 있지만 옛날 사람은 그럴 수 없잖아요. 남아 있는 게 벽화라든지 신화라든지, 옛날 유물, 그런 것밖에 없는데 그런 것은 내 연구로 확대하기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유물로 남아 있는 불상의 얼굴 표정을 생각했는데 대웅전 안에 있는 부처님은 규격화가 되어 있단 말이에요.

우리 속담에 `석불은 석수장이 마음대로 다듬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것이 옛날 우리 선조들의 모습하고 비교적 비슷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대웅전 안의 금동불상을 귀족들이 조성했다면 석불은 노천에서 민중들이 만든 것이지요. 그러면 석불의 얼굴을 통해서 한국인의 민족성을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고 이런 관심을 갖고 산을 다니다 보면 중턱쯤에는 석불이 항상 있는 거예요. 이 두가지가 맞아떨어져 일요일이나 시간이 나면 줄곧 석불을 찾아다녔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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