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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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인의 죽음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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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벽제 화장터의 아침은 을씨년스런 날씨 탓인지 괴괴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고 온 문단의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밤의 과음이 남긴 텁텁한 입안을 맥없는 군소리로나마 애벌로 헹궈내고 있었다. '도서출판 자유시대'의 편집장인 이기철은 몇몇 낯이 익은 문인들과 목례 정도로 인사를 떼우고 저 혼자 복도 한켠에 멀거니 서 있었다.

박시인의 죽음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신길로 가변차선에서 발견된 박시인의 차는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트럭과 정면 충돌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는 터라 이기철은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하여 실제로 사고차의 처참한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날 박시인은 다름 아닌 '자유시대'의 사무실을 방문한 뒤 귀가를 하던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자유시대에선 박시인의 마흔한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그 시집은 박시인의 유고시집이 될 터였다.

박시인의 화장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직 사고의 잘잘못은 가려지지 않고 있었다. 박시인의 인척인 관할 경찰서의 담당 형사가 개입하여 수사를 하고 있다니 곧 사고의 전말이 밝혀질 것이다. 어쨌든 박시인의 지인들은 모두 트럭 운전수의 잘못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꼼꼼한 성격인 박시인이 까닭없이 불법으로 가변차선으로 뛰어들었을 리는 만무했고, 또한 일반적으로 트럭 운전수들의 잦은 교통위반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박시인의 아내와 대학을 다니는 무남독녀 외딸은 지치지도 않고 강물처럼 길게, 오래 울었다. 처음 눈물은 다음 눈물을 부르고 그 눈물은 이내 한층 가라앉은 눈물로 앞의 눈물에 값하며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기철은 그녀들의 눈물이 안쓰러워 몇 번이나 어금니를 앙 다물었다. 사실 이기철은 가족만큼은 아니겠지만, 내심 박시인을 늘 외경하고 있던 터라 누구 못지 않게 박시인의 죽음을 가슴아파하고 있었다.

내일 모레 육십인 박시인은 정말 지칠 줄 모르는 불도저 같은 시인이었다. 그는 늘 바빴고 바쁜 만큼 다작이기도 해서 30년의 문단 행로에 무려 40여 권의 시집을 냈다. 또 소설도 써서 10여 권의 장편소설도 가지고 있었다. 수필집도 30여 권이나 되었다. 그는 참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살았다. 한 순간 미국에 가 있는가 하면 어느 겨울엔 인도를 여행 중이었고, 또 며칠이 지나면 목포로 부산으로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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