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준비하는 농사꾼의 마음으로
상태바
봄을 준비하는 농사꾼의 마음으로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의 샘 / 새해의 소망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형도 시인은 연작시 ‘겨울’ 가운데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라 경제가 부도를 당한,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춥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긴 겨울에, 나는 다시 이 시의 행간을 읽는다. 그렇다. 우리가 이 추운 겨울의 행간에서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이다.
땀 흘려 일한 뒤 하루치 일용할 양식 앞에서 머리 조아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가. 지척에 사는 동포들이 굶어 죽어 가는 것도 모르는 척하고 흥청망청 우리는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왔던가. 땅에 발을 딛고 대자연 앞에 허리 숙여 이웃을 먹여 살리는 정직한 노동과 다른 모든 기초 생산을 마치 사람이 할 수 없는 더럽고 비천한 일인 양 여기면서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번지르르하고 알맹이 없는 경제의 거품을 즐기며 살아왔던가.
나는 지금의 ‘겨울’을 우리가 그 동안 저질러 온 무지몽매한 삶의 ‘동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재앙은 어느 통치자나 몇몇 경제 관료의 책임이 아니다. 근본을 따져 볼 때 이 동티는 ‘내 탓’이다. 따라서 참회도, 새로운 다짐도 남에게 돌릴 일이 아니다.
또 늘 해오던 것처럼 뿌리는 모르는 척하고 증상만 치유하는 엉터리 처방으로 넘어갈 일도 아니다. 뿌리는 어디인가. 내 마음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헛바람 든 내 속내를 살피는 것이, 그리하여 그저 내가 겸손한 마음을 되찾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우리 시대의 경제학이라고, 경제학 들머리에도 들어가 보지 못한 나는 감히 믿는다.
추운 겨울 속에서도 어김없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새해를 맞으며 나는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물듯 다짐해 본다. 동네 텃밭이든 개천가 놀고 있는 땅이든, 그것도 안 되면 작은 나무 상자에 흙을 담아서라도, 철따라 심을 만한 꽃이든 푸성귀든 심어 정성껏 가꾸어 보리라고.
지난해 나는 아내와 두 돌박이 아들을 데리고 귀농하려다 여러 사정 때문에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사정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올해 안에도 그 꿈을 실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만, 귀농을 생각하면서 꿈꾸었던 많은 것들-땀흘리는 건강한 노동, 자연 앞에서의 겸손 같은-을 이 도시 속에서라도 조금씩 키워 나가야겠다고 간절한 마음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렇게 하여 어설프게나마 농심을 조금씩 이라도 키워 나가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준비 못지 않게 중요한 귀농 준비가 아닐까. 나아가, 생명을 먹이고 기르고 나누어 주는 농사꾼의 겸손한 마음을 내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이 위태로운 시대에 진정한 처방이자 가장 뛰어난 ‘정책’이라고 나는 감히 믿는다.
세상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스승들은 우리 하나하나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대파국’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경고하지 않았던가.
좋은 뜻 가진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부르지 않아도 쫓아다니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이미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참된 삶과 나눔의 공동체를 찾아 농촌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더 많은 이웃들이 이 새로운 물결에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
변홍철 님은 ’69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문학 동인 「저인망(底引網)」에서 시를 쓰면서 몇 권의 동인지를 내었다. 지금은 도서출판 「내일을 여는 책」에서 교육 관련 책들을 기획 편집하고 있으며, 교육 사상 잡지인 격월간 「처음처럼」의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또 「새로운 삶과 교육을 연구하는 모임」에 참가하여 지속 가능한 공동체적 삶과 대안 교육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귀농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이석우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