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기자신을 찾아야만 사람노릇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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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자신을 찾아야만 사람노릇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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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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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 탐방/달성군 비슬산 도성암 성찬 스님

현풍읍 에서 비슬암 도성암까지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 도성암에서 십리도 더 떨어진 아랫마을(유가리)행 버스는 하루 고작 네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단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아 타고 논길 밭길 지나 비슬산에 오르는 동안 좌불안석이었다.

성찬 큰스님께서는 팔순 노구에도 불구하고 항상 버스를 이용, 산길을 오르신다는데 젊디 젊은 게 택시 안에 몸을 싣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비슬산의 경관은 점입가경... 아름드리 소나무며 이름모를 활엽수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그 푸른 향기 속에서 눈푸른 납자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성암 노스님 뵈러 가시능교. 노스님은 보통분이 아니십니더. 도인스님으로 소문이 쫘악 나 있습니더. 저도 일전에 뵌 적이 있는데 참말로 우리네와는 달라 보입니더. 나무들과 산새들과 말을 주고 받는 듯하셨습니더."라는 택시기사의 감동섞인 말에 위안받고 있는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루에 한마디도 하시지 않을 정도로 말씀을 아끼시는 분이라는 도성암 대중들의 귀뜸처럼 성찬 큰스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적적한 침묵이 흘렀다. 스님 처소에 모셔진 만공 큰스님의 진영 덕분에 겨우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스님, 만공 큰스님을 뫼시고 사신 적이 있으시죠? 만공 큰스님께서 일러주신 특별한 가르침이나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신지요.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그다지 생각나는 일이 없습니다. 특별히 지도받은 것도 없구요. 하기야 수행이 어디 지도받는다고 해서 되는 것인가요. 스스로 발심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언제였던가. 간월도에서 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만공 스님께서 '저 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언하에 내가 주먹을 턱하니 내밀자 만공 스님께서 아무 말씀없이 안으로 쑥 들어가셨지요.

이 집안 소식은 구구절절이 말로 풀어내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대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공부가 된 마음을 알아보는 선지식을 만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유가 다 그런 데 있습니다.

한번은 정혜사에서 정진 중이었는데 당시 전월사에 계셨던 만공 스님께서 정혜사에 오셨습니다.

그때 정혜사 선방 문 앞에 코스모스가 한 포기 피어 있었는데 만공 스님께서 입이 마르도록 코스모스를 칭찬하시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스님, 코스모스가 아주 숭한(?) 괴각입니다. 오똑하니 서서 건들거리는 저 폼이 영락없는 괴각입니다.'라고 하자 만공 스님께서 내게 '요것이 나를 놀린다'고 하시는데 그만 거기에서 콱 막혀버렸습니다.

자성 자리, 주인공 자리를 찾으면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해도 진리에 계합됩니다. 하지만 공부가 완전히 익지 않았을 때는 아무리 사량분별을 해도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막힌 것을 뚫을 수 없습니다."

선가(禪家)의 칠통타파(漆桶打破)라는 말도 그러한 데서 연유한 것이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진리를 깨닫지 않고서는 봐도 봤다고 할 수 없고 들어도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혜의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캄캄하다는 것을 칠통 속의 어두움에 비유, 그 어두운 무명(無明)을 타파하여 깨달은 때를 일러 칠통타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 납자들뿐만 아니라 불교신자라면 누구든지 자성자리를 찾아 칠통타파하는 데 전심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찾는 것이 불교요, 자기를 찾아나가는 것이 불자의 본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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