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창간 50주년] 등가원리(等價原理)와 영혼(靈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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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창간 50주년] 등가원리(等價原理)와 영혼(靈魂)
  • 성철 스님
  • 승인 2024.02.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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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불광 ③ 1982~1984
해탈에 이르는 길 | 성철 스님(조계종 종정스님)

불교는 불생불멸

일체 만법이 나지도 않고
일체 만법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만약 이렇게 알 것 같으면
모든 부처가 항상 나타나 있다. 
一切法不生(일체법불생)
一切法不滅(일체법불멸)
若能如是解(약능여시해)
諸佛常現前(제불상현전)

이것은 화엄경에 있는 말씀인데 일체 만법, 즉 세간법(世間法), 출세간법(出世間法), 유정(有情), 무정(無情)할 것 없고, 천삼라(天森羅), 지만상(地萬象) 온 우주 전체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말입니다. 불생불멸이므로 증감도 없고 손익도 없다는 말입니다. 

또 법화경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주해서 즉 모든 만법이 
각기 자기 위치를 정하여 차지하고 있어서 
세간상이 그대로가 상주불멸이다. 
是法住法位(시법주법위) 
世間相常住(세간상상주)

이것을 불교에서는 법계(法界), 법의 세계라고 합니다. 법의 세계는 진시방 허공계(盡十方虛空界)를 다하여 한이 없습니다. 광대무변하여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이 법의 세계는 본래 그 자체가 불생불멸이며 동시에 부증불감입니다. 이 법 자체를 불생불멸이라고 하는 것 같이 이 법 자체를 깨친 부처를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부처란 다른 것이 아니고 이 불생불멸하는 법 자체를 깨친 이를 말합니다. 부처를 깨치는 원 자성(自性) 그것도 불생불멸입니다. 자성은 본래 불생불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불생불멸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불생불멸이라고 하는 까닭에 결국 상주(常住)입니다. 항상 주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불교에서는 상주법계(常住法界)라고 합니다. 항상 주해 있는 법의 세계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대장경의 모든 법문은 이 「불생불멸」 넉 자 위에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생불멸이라는 근본 원리에서 한 발이라도 벗어나면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 골수, 근본 원리는 어느 곳에 있느냐 하면 불생불멸에 있다 이것입니다. 

이제 막 말했듯이 「세상살이 그대로 상주불멸이다(世間相常住)」 하는데 이것부터가 거짓말 아닌가?

세간이란 모든 것이 생자필멸(生者必滅)로서 나는 것은 반드시 죽습니다. 사람도 나면 죽고, 나무도 나면 죽고, 풀도 나면 죽고, 짐승도, 벌레도 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나면 다 죽는데 어째서 「상주(常住)」라고 했을까? 그러면 3천여 년 전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말인가? 부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생자필멸, 난 자는 반드시 멸해 없어진다는 것은 피상적인 견해입니다. 피상적으로 본 견해일 뿐 실제 근본적인 삼라만상의 실상은 못 본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 피상적인 가상(假像)은 생멸이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만, 원래의 근본 실상(實像)은 결코 생멸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근본 실상에서 말씀하신 것이지 가상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불교적으로 장광설(長廣舌)하게 이야기하려면 팔만대장경이 다 펼쳐지는 것이므로 그 근본 원칙만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연과학과 불생불멸

불생불멸이란 것이 불교에서만 통하는 말인가? 이것은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불교의 전용이었습니다. 불교 이외에는 불생불멸이라는 것을 쓰는 데도 없었고, 그런 원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수천 년 동안 발달해온 현대에 있어서 가장 발달된 원자 물리학의 근본 원리가 「불생불멸」 넉 자 위에 서 있습니다.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 요소는 무엇인가 할 때, 요즘 말로 쉽게 말하면 에너지와 질량입니다. 이 자연계에서 에너지와 질량을 제외하고 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에너지와 질량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상주법계에서 우주의 모든 것, 천삼라 지만상이 온통 불생불멸이라고 하면 에너지와 질량도 불생불멸이라는 말인가? 이것이 불생불멸 안 되면,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너지와 질량이 불생불멸이라는 것이 지금에 있어서는 확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에너지가 보존된다. 또 질량이 불변이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와 질량을 분리하여 설명을 했습니다. 여러 실험 결과 에너지도 증감이 없고, 질량도 증감이 없이 둘 다 각각 불생불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에너지와 질량은 두 개의 다른 것으로 구별하지 않고 에너지가 곧 질량이고 질량이 곧 에너지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전체가 질량으로 변할 수 있고, 질량 전체가 에너지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생멸도 없고 증감도 없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물 한 그릇을 얼게 하면 얼음이 되고 얼음을 녹이면 물이 됩니다. 물이 얼어서 얼음으로 되었다고 물이 없어진 것 아니고, 또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었다고 얼음이 없어지고 물만 생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얼음이 없어지지 않고 물이 없어지지 않았으니 불생불멸이며, 동시에 물 한 그릇은 항상 그대로 일뿐 증감이 없습니다. 즉 불생불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고도의 기술로써 실험을 하여 무형인 에너지를 유형인 질량으로 전환시키고, 또 유형인 질량을 무형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데에 완전히 성공한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실험을 처음에는 앤더슨(Carl. D. Anderson)이 부분적으로 성공했고, 나중에는 세그레(Emilio Segre)라는 이가 전체적으로 성공했습니다. 후에 두 사람은 각각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본 결과 질량이 에너지이고 에너지가 질량임이 더욱 분명해졌고 동시에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될 때, 또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될 때 언제나 증감이 없고 손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리하여 불교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완전히 입증되어 버렸습니다. 

 

허공이 돌덩어리다

이것만 입증된 것이 아닙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유형이 즉 무형이고 무형이 유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을 속여도 분수가 있지, 그렇다면 돌덩이가 허공이고 허공이 돌덩이란 말인가?

외견상 볼 때는 허공이 다르고 돌덩이가 다른 것 같지만 자꾸자꾸 원소를 분석해 들어가 보면 결국 돌덩이가 그대로 허공이고, 허공 이대로가 돌덩이인 것입니다. 즉 무형인 에너지가 유형인 질량으로 유형인 질량이 무형인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색과 공도 결코 둘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우리 불교의 가장 골수이며 동시에 깊은 원리인 불생불멸의 원리, 색공의 문제, 이것이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것입니다. 

 

불교와 영혼

지난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학자, 철학자, 종교가 할 것 없이-에 의해 논란이 되고 싸움하면서도 완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로, 영혼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 철학자, 종교가는 영혼이 꼭 있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그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싸움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내려왔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는가?

대소승 경론, 대승이나 소승이나, 경이나, 논이나를 막론하고 일체 경론에서 부처님은 생사 윤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몸을 바꾸어서 나고……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윤회는 우리 불교의 근본 원리의 하나입니다. 그것도 핵심적인 원리입니다. 

윤회를 한다면 윤회하는 자체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지적을 하지는 않았지만 식(識)으로 말하면 제8아라야식(Alaya識, 阿羅耶識)을 지적하며, 그것은 영혼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전식(現前識)은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지만 제8아라야식은 그대로 남아서 생사 윤회하는 근본이 되어 자꾸 되 태어나고, 되 태어나고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윤회와 해탈 

그럼 윤회라는 것도 확실히 성립되는 것인가? 

근래 세계적인 대학자들은 영혼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라야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윤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 윤회는 부처님께서 교화(敎化)를 위해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지 실제 윤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여 겁이 나서 사람들이 행동 잘하도록 교육적인 방편(方便)으로 하신 말씀이다. - 

그런데 근래 물질과학만이 아니라 정신과학도 자꾸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 윤회가 있다는 것, 인과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됨에 따라, 불교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전에는 교육적인 방편설이라고 하였지만 여러 가지 과학적인 증거로 봐서 영혼이 있고 윤회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  

(…중략…) 

영혼이 있는가 하는 데 대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 부처님은 거짓말 안 해. 부처님 말씀 그대로를 믿으면 
그만 아닌가. 있고 없고를 따질 것 무엇 있어! - 

이것은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제삼자로 상대하는 경우에,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방편인지 혹은 실제인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내려야만 승려 생활하는 데에, 포교(布敎)를 하는 데에 그리고 수행하여 성불하는 데에 본격적인 방침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 서면 모든 것이 다 허물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 글은 당시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의 설법을 시자실에서 녹음 정리한 내용입니다. 1984년 1월호(통권 111호)에 실렸으며 현대적 문법으로 일부 교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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