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주년 법련사 주지 진경 스님 “목우가풍(牧牛家風) 잇는 서울의 도심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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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법련사 주지 진경 스님 “목우가풍(牧牛家風) 잇는 서울의 도심 사찰”
  • 김남수
  • 승인 2024.02.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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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50년, 나아갈 100년 ① 법련사

1974년 창간된 월간 「불광」이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았습니다. 1974년 같은 해 창간된 사찰과 단체를 찾아 지난 50년을 되돌아볼 예정입니다. ‘1974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맞이할 100년을 준비합니다. 첫 번째 순서로 1974년 1월 5일 창건한 종로 법련사를 찾아 주지 진경 스님을 인터뷰했습니다. 

 

경복궁 동십자각 길 건너 있는 법련사는 1974년 1월 개원했으니, 올해로 꼭 50년이다. 근처 대로변에는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절 안으로 들어가면 정적이 흐른다. 아담하지만 ‘고요함’이 있는 사찰이다. 

법련사 50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법련화 김부전(1922~1973) 보살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아들 김선재(1967~1990)다. 법련화 보살은 1973년 죽음을 앞두고 건물과 토지를 기증해 법련사를 창건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정희자 여사는 아들 김선재의 죽음 이후 법련사를 오늘날 모습으로 중창했다. 

 

법련화 보살

황해도 장연군 출생의 법련화 보살은 1940년 21세 때 금강산 정양사에서 적음 스님의 금강경 법문을 듣고 불교에 귀의했다. 해방 이후 서울에 와서 사업을 크게 일궜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국제극장. 광화문 거리에서 이 현대적인 극장을 운영했으며, 이외에도 많은 사업을 했다. 한편으로는 6.25 전쟁 이후 힘든 사람을 위해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사업도 진행했다. 

이즈음 인연이 된 분이 효봉 스님과 구산 스님이다. 1950년대 불교계는 혼란스러웠고, 통합종단 초대 종정으로 효봉 스님이 추대됐다. 법련화 보살은 비구 스님들을 후원하고 있었고, ‘불교정화추진위원회’ 재가 불자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법련화 보살은 불교가 어려울 때 많은 스님을 모셨습니다. 효봉 스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던 것은 두 분 모두 이북이 고향이었던 점도 있었던 듯합니다. 정신적으로 스님께 크게 의지했고, 개인적으로도 아버님 이상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1966년 효봉 스님이 입적할 때 일체 경비를 도맡았으며, 이후에도 송광사와 인연이 이어졌다. 1973년, 죽음이 바로 눈앞에 왔음을 직감한 법련화 보살은 순천 송광사로 내려갔다. 1973년 11월 17일 구산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고, 다음 날 세상과의 인연을 다했다. 54년의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수행자로서 마지막을 맞은 것이다. 

법련화 보살은 11월 13일 유언을 남기며, 현재 법련사 부지의 자택을 기증하고 당시로서는 꽤 큰 금액인 1억 원으로 ‘부전장학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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