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안(開眼)
제주 내려와 눈비늘이 벗겨진 건 괭이나물꽃 덕이었습니다. 1월 잔설에 순을 돋우고, 이월 모진 영등바람을 견디며 보랏빛 입술을 삐죽 내밀고 해바라기를 하는 다년생 들꽃입니다. 동백꽃은 탐하기에 너무 키가 높고, 수선화는 아직 꽃망울을 품속에 감추고 있을 때 괭이나물꽃 향기가 먼저 작은 뜨락을 차지합니다. 세상 것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살자 다짐했던 것이 고작 내가 익혔던 학學과 습習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손톱만한 괭이나물이 일깨웠습니다.
무릎 아래 더 많은 별들이 뜨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자기 영토에서 어깨를 겯고, 숨결을 나누며 살아가는 생명들이 밤이면 빛도 없이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눈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 나는 자주 무릎을 꿇었습니다. 달밤에도 시꺼멓게 내려와 뻔히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자 큰별꽃, 민들레, 고들빼기들이 마침내 낯을 가려도 모른 체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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