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출현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육사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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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출현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육사외도
  • 장휘옥, 김사업
  • 승인 2018.10.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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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불교학개론 ]

“예리한 칼로 목을 쳐도 칼은 7요소의 틈을 통과했을 뿐, 누구도 누구를 죽이지 않았다.” (『사문과경』에서 빠꾸다의 설)

“모든 것은 괴로움을 싫어한다.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된다. 어떤 것도 결코 죽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마하비라(=자이나교의 창시자)의 정수다.” (『수야가당가(자이나교 성전)』 1.11.7~11)

|    도시 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문의 등장

세상의 모든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사상사思想史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회・문화・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불교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출현했으며, 불교를 지지하고 받아들인 시대적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고찰은 불교와 거의 동시대에 등장했던 수많은 비전통적 사상가들, 즉 사문沙門들의 사회・경제적 출현 배경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를 비롯한 사문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시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까닭에, 그 시대적 출현 배경도 사문 모두에게 공통된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교가 흥기하기 직전, 인도에는 약 1,000년에 걸친 베다 시대, 즉 바라문교의 시대가 있었다. 베다 성전이 성립되고 이에 근거한 베다 제사(=제식祭式) 문화가 전개된 시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초기 국가’라 할 수 있는 왕국들도 생겨났다. 이와 함께 왕을 정점으로 하는 통치 체제와, 카스트 제도로 알려진 사성四姓계급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그 후에 전개될 인도 사회의 기본 골격이 확립되었다. 

베다 시대는 스스로를 ‘아리야’라고 칭하는 서양인 계통의 사람들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서북 인도의 인더스강 상류 펀잡 지방으로 이주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리야인들의 이주가 있기 전 이곳은 인더스 문명(기원전 2,500년경~기원전 1,800년경)을 건설한 피부색 검은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선주민을 정복한 아리야인들은 선주민의 토착 문화와 융화하면서 남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아리야인들은 이주 후 적어도 기원전 800년경부터는 철기鐵器를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철기로 제작된 농기구를 사용하여 갠지즈강 저지대의 울창한 산림을 없애고 농지를 개간함에 따라 갠지즈강 중류 지역까지 이주하게 되었다. 벼농사에 좋은 환경을 가진 이 지역의 개발에 의해 풍부한 잉여 농산물 산출이 있었고, 경지의 사유화가 진전되어 빈부의 차도 발생하게 되었다. 

농업 생산의 증대로 인해 수공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수공업자가 출현했다. 이에 따라 농산물과 수공업품의 교역이 활발히 일어났고, 교역과 수공업품 생산의 중심지에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기원전 500년 무렵, 갠지즈강 유역을 중심으로 이렇게 도시화가 일어났다. 불교 문헌에 등장하는 대표적 도시인 사위성(쉬라바스띠), 왕사성(라자그리하), 베사리(바이샬리) 등은 이때 생겨난 도시들이다. 도시에는 왕궁이 있었고, 상인과 장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번영을 누렸다. 화폐도 등장했다.

중요한 것은 갠지즈강 중류의 도시 사회가 전통적인 바라문교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바라문교를 수용하기는 했지만 바라문교 문화와는 다른 토착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어서 바라문교가 깊이 정착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사성四姓계급 제도에도 비판적인 분위기였다. 이런 경향으로 말미암아 도시화된 이 지역에는 새로운 종교와 사상이 생겨나고 수용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 또한 사문들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도 갖추어져 있었다. 사문들은 출가하여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탁발하여 얻은 음식으로 생활했다.

불교나 자이나교 등 사문들의 종교와 사상은 갠지즈강 유역의 이 도시 사회를 주요한 활동 기반으로 하여 성립했다. 

도시의 상공업자, 특히 금융업자는 도시 생활을 멸시하는 바라문교의 입장에서 보면 낮은 신분에 속했다. 그러나 불교는 그들을 성직자(=바라문)나 왕족과 동등한 ‘고귀한 신분’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불교의 지지자가 되었다. 자산가 수닷따Sudatta 장자가 그 전형적인 예다. 그는 꼬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에 대표적인 불교 사원인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보시했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Pasenadi 왕이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Bimbisāra 왕처럼 왕들도 불교의 보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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